항목 ID | GC00901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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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稼倉里石佛立像 |
영어음역 | Gachang-ri Seokbulipsang |
영어의미역 | Stone Standing Buddha in Gachang-ri |
이칭/별칭 | 가창리 석불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 528-10[근곡로 239-1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임석규 |
성격 | 석불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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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일시 | 조선시대 |
재질 | 화강암 |
높이 | 297.5㎝ |
소장처 | 용화사 |
소장처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 528-10[근곡로 239-13]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 용화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불입상.
[개설]
가창리 석불입상은 가창리의 용화사(龍華寺) 뒤편에 지은 보호각 안에 안치되어 있다. 보호각은 김호창이 처음 세웠고, 이후에 퇴락된 것을 지금의 용화사 주지가 개축하였다.
[형태]
불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화강암 일석(一石)으로 조성된 대형 불상에 속한다. 난형(卵形)의 큰 두부(頭部)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을 가득 메웠으며, 두부에 비해 좁은 얼굴에 눈을 튀어나오듯 크게 조각하였고, 코 역시 크고 뭉툭하다.
입술선을 호형(弧形)으로 새겨 온화한 미소가 얼굴 전반에 퍼져 있다. 큰 귀는 어깨까지 닿아 사실성이 떨어진다. 몸에는 의습선(衣褶線)을 전혀 표현하지 않았고, 어린아이 같은 손만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상호에는 보수된 흔적이 있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297.5㎝이며, 머리 높이 100.5㎝, 어깨 폭 87.5㎝, 몸통 아래 부분 두께 72.5㎝, 어깨 부분 두께 58.5㎝이다.
[특징]
가창리 석불입상은 목이 생략되고 이마에 기하학적 문양이 조식되었으며, 양감이 전혀 없는 거대한 신체을 지녔고, 옷주름 없이 목 뒤에 옷깃만이 표현된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불상보다는 문관상(文官像)에 가까운 모습이다. 조선시대 문관상의 관모에는 화문이 시문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17세기 이후의 상에서 볼 수 있다.
가창리 석불입상을 닮은 불상으로는 안성시 삼죽면에 있는 국사암(國師庵) 세미륵이나 괴산 능촌리(陵村里) 석불입상 등이 있다. 조선시대 석인상과 불상의 도상이 혼재되어 있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산릉도감(山陵都監)의 인원 구성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능침 조성에 관련된 모든 일을 전담했던 산릉도감에는 양인(良人) 출신도 많았지만 불교 승려들도 소속되어 있었다. 이것은 왕릉의 석인상 조성에 승장(僧匠)이 직접 참여했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석인상 제작자와 불상 제작자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도상이나 양식이 혼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의의와 평가]
가창리 석불입상은 비사실성을 중점적으로 부각하여 의도적으로 예배자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려 한 불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