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7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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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宗璘 |
영어음역 | Jongrin |
이칭/별칭 | 중지,현오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박정미,홍영의 |
[정의]
고려 전기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광교산 산록에 소재했던 서봉사 승려.
[가계]
휘는 종린(宗璘), 자는 중지(重之), 속성은 왕(王)씨로 고려 17대 국왕 인종(仁宗)의 아들.
[활동사항]
13세 때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고 15세 때인 1141년(인종 19) 개성 불일사(佛日寺)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인종이 항상 궁궐 내 도량으로 종린을 초빙하여 강론을 들었으며 1146년에 수좌(首座)로 진급시켰다. 그 후 귀신사, 국태사, 중흥사, 부석사 등에 주지하는 동안에도 검소하여 방장실 안에 10전(錢) 값어치의 저축물도 없었으므로 사부대중이 모두 존경하였다. 이에 임금이 승통(僧統)으로 추대하였다.
1171년(명종 1) 임금이 만수가사(滿繡袈裟) 1벌을 하사하고 그해 겨울 백고좌회(百高座會)를 열고 스님을 청해 강설을 듣은 후 임금이 좌세(佐世)라는 호를 내리고, 내전에 불러서 가사 한 벌을 하사하였다. 이때 의종의 아우인 충희(冲曦)를 출가시켰다. 1179년 6월 29일 세속의 나이 53세, 승가의 나이 39세로 입적했다.
[묘소]
1179년 입적하자 개성 동남쪽 귀법사에 시신을 임시로 모셨다가, 7월 17일 동림산 기슭에서 다비를 하고 11월에 장단현 대탁산에 안치했다.
[상훈과 추모]
1179년 명종이 현오국사(玄悟國師)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1185년 2월에는 종린의 제자들이 왕명을 받들어 서봉사에 탑비를 세웠는데, 한림학사 이지명(李知命)이 비문을 짓고 문림랑 유공권(柳公權)이 글씨를 썼다. 탑비는 현재 보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