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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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厚載墓 |
영어의미역 | Tomb of Sin Huj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 정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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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합장묘 |
건립시기/일시 | 1699년 |
관련인물 | 신후재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 정도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 정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후재의 묘.
[개설]
신후재(申厚載)[1636~1699]는 강화부유수, 개성부유수, 한성부판윤을 지냈고 1694년에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서인에 의해 여주에 유배되었다. 1697년에 석방되었으나 은퇴하여 충주 오갑장에서 학문에만 전념했다. 주요 저서로는 『규정집(葵亭集)』이 있다.
[위치]
신후재 묘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IC에서 국도 38호선 옛 국도를 따라 궁장 방면으로 2㎞쯤 가면 오른쪽으로 정동이 나타나는데, 이 마을의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형태]
신후재 묘는 정부인 진주유씨(晋州柳氏)와 합장묘이며, 묘역은 잘 단장되어 있다. 묘 앞에는 상석이 있고, 좌우로 망주석과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봉분 오른쪽에는 최근에 건립된 묘비가 있다. 상석 앞쪽으로는 장명등이 놓여 있다. 비신은 대리석제로 대좌와 이수의 홈에 맞추어져 있고 4면에 그의 일대기가 음각되어 있다. 비신의 높이는 143㎝, 너비는 59㎝, 두께는 21.5㎝이다. 신도비는 묘에서 남서쪽으로 60m 떨어져 있다.
[금석문]
신후재 묘 비문은 이익(李瀷)이 짓고, 증손 신준악(申峻岳)이 썼다.
[현황]
신후재 묘는 석물이 잘 남아 있고 신도비가 같은 묘역에 위치한다. 문화재로 지정하여 잘 보존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