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동맹휴학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884
한자 密陽同盟休學事件
영어공식명칭 The Students Boycotted Classes of Miryang
이칭/별칭 밀양학생운동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손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2년 1월 12일연표보기 -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운동 발생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7년 11월 9일연표보기 - 밀양농잠학교 동맹휴학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22년 1월 13일연표보기 - 밀양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30년 12월연표보기 - 밀양농잠학교 동맹휴학 종결
발생|시작 장소 밀양공립보통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282-12[삼문동 3-5]지도보기
발생|시작 장소 밀양농잠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 1025-1 지도보기
종결 장소 밀양공립보통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282-12[삼문동 3-5]
종결 장소 밀양농잠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 1025-1
성격 항일 학생운동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시에 발생한 학생운동.

[개설]

밀양동맹휴학사건일제강점기밀양공립보통학교와 밀양농잠학교에서 각각 일어났다.

밀양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은 1922년 1월 12일과 13일, 4학년과 5학년이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기 위하여 등교를 거부하면서 일어났다.

밀양농잠학교의 동맹휴학 사건은 1927년 1학년, 2학년, 3학년이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면서 일어났다.

[역사적 배경]

밀양동맹휴학사건은 1897년 손정현이 설립한 밀양 지역 최초의 사립 개창학교를 계승한 학교인 밀양공립보통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밀양공립보통학교3·1운동에 학생들이 적극 가담하고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일제의 의하여 현재 밀양초등학교 자리로 강제 이전을 당할 만큼 민족의식이 강한 곳이었다.

동맹휴학은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의 권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기 동맹휴학은 항일 민족운동 성격을 띤 대표적인 학생운동이었다. 1920년대 학생들은 3·1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항하는 한편, 민족운동의 일환으로서 다방면의 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맹휴학은 일제 식민지 노예 교육에 대한 규탄, 총독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되고 발전됨으로써 독립운동의 성격으로 바뀌어 한 학교, 지역의 문제가 아닌 한민족의 문제로 발전되었다.

일제강점기 교육은 식민 지배의 공고화, 합리화로 일제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인격을 하대하였고 일본인들은 한국인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과 지배욕에 사로잡혀 모욕적인 언행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일제 헌병, 경찰들은 일본인 옹호로 조선 학생만 처벌받았던 시기였다.

[경과]

밀양동맹휴학사건밀양공립보통학교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922년 1월 12일 밀양공립보통학교 4학년생과 5학년생이 일본인 교사 아라키의 말을 듣지 않고 연명 퇴교한 뒤 삼문리 청년운동장에 모여 담임 교사 배척 시위 운동을 결의하였고, 밀양군청으로 몰려가 교사 처분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밀양군 당국은 교장 부재를 들어 향후 조치를 약속하고 등교를 권유하였으나 학생들은 1월 13일 전체 동맹휴학을 하고 교사 사죄 없이 등교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였다.

밀양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 이후 1927년 밀양농잠학교에서 또 동맹휴학이 일어났다. 밀양농잠학교 동맹휴학은 1927년 11월 9일 2학년 급장 이몽돌이 일본인 순사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받았음에도 일본인 교사가 일본인 순사를 옹호하고 나서자 2학년생 전원이 등교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본인 순사 징계와 일본인 교사 배척을 요구하며 1학년생까지로 확대된 동맹휴학은 일본인 교사 스즈키가 3학년 학생을 사주하여 맹휴 주동자를 구타하여 더욱 확대되었다. 1930년 11월 수학문제 등을 계기로 1학년, 2학년, 3학년 학생 전원이 동맹휴학하였다. 밀양농잠학교 동맹휴학은 1930년 12월 2차 동맹휴학으로 이어졌다.

[결과]

밀양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은 군 당국이 학부형을 설득하여 마무리되었으며, 밀양농잠학교 동맹휴학 사건은 동맹휴학에 참여한 학생 전원을 퇴학시킴으로써 끝이 났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학생 운동으로서 구속, 체벌 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맹휴학으로 단결하여 민족의 고난을 인식하고 저항한 젊은 세대의 항일 독립운동이다.

[참고문헌]
  • 경상남도청(https://www.gyeongnam.go.kr)
  • 국사편찬위원회(https://www.history.g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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