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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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납리(佳納里)라는 땅 이름은 가라비·가래비·가납·추교(楸橋)라고 불리는 것으로 볼 때, 가래나무가 많아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가래나무가 많은 지역이라는 뜻을 지닌 ‘가납’을 그냥 한자로 옮기면서 아무 뜻이 없는 ‘가납(佳納)’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나 일설에는 광적면의 북서쪽에 있는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여러 물줄기가 가래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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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서 설립된 교육 후원 단체. 공보기성회(公普期成會)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지역에 근대식 교육 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1927년 초부터 백남용(白南容)·서승복(徐承復)·이하용(李夏鎔)·김풍진(金豊鎭) 등의 발기로 공보기성회를 조직하여 5월에 가납공립보통학교의 설립을 도모했으며, 학교 설립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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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석리(廣石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곳의 밭 1,000여 평에 돌이 한 자[尺] 깊이로 깔려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과, 마을에 넓은 들이 있어 넓은들·나븐들이라 부르던 것이 ‘너븐’과 ‘너븐돌’과 ‘넓은돌’을 거쳐 ‘광석(廣石)’이라는 한자어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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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석리(廣石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곳의 밭 1,000여 평에 돌이 한 자[尺] 깊이로 깔려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과, 마을에 넓은 들이 있어 넓은들·나븐들이라 부르던 것이 ‘너븐’과 ‘너븐돌’과 ‘넓은돌’을 거쳐 ‘광석(廣石)’이라는 한자어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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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는 광적면 관할 행정 기관. 광적면사무소는 경기도 양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백석읍], 4개 면[은현면·남면·광적면·장흥면], 6개 동[양주1동·양주2동·회천1동·회천2동·회천3동·회천4동] 중 광적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광적면사무소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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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도리(德道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로부터 도덕을 잘 지키고 이웃 간에 우애가 깊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점미산 뒤쪽이므로 덕뒤·덕디라 하다가 덕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덕도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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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비암리(比岩里)라는 땅 이름은 이 지역에 있는 견준바위, 즉 비암(比岩)에서 유래하였다. 지금은 도로 확장 과정에서 거의 파손되었지만 옛사람들은 이 바위를 막대기로 견주면서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고 전한다. 비암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광석면 사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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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우리(石隅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우리에 흐르는 하천인 석우천의 모퉁이에 있던 돌문에서 ‘돌모루 또는 ‘석우’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땅 이름 유래와 관련된 돌문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이곳에 와 시주를 청하였으나 동네 사람들이 ‘쇠똥도 없다’고 하며 내쫓았다고 한다. 이에 스님이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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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우고리(遇古里)라는 땅 이름은 여러 개의 골짜기가 이곳에서 만난다는 뜻의 우곡리(遇谷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광석면에 소재한 우곡리(牛谷里)라는 마을이 등장하는데, 이곳이 지금의 우고리를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일설에는 연산군의 폭정 당시 삼각산 북쪽 자락에서 약 100리에 이르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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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효촌리(孝村里)라는 땅 이름은 효가동(孝佳洞)에서 ‘효’자와 회촌리(檜村里)에서 ‘촌’자를 한자씩 따서 만들어졌다. 효가동은 옛날 효자가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회촌리는 전나무 숲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효촌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