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경기도 양주 출신 인물들. 1910년 불법적 한일 강제 합방이 이루어지고, 1910년에서 1920년대에 걸쳐 점차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이 잇따르면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조직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이는 3·1 만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후에도 국내 및 국외에서 직접...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시민을 중심으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전개하는 운동. 양주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회 운동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이다. 1920년대 청년 운동이 전국으로 불길처럼 번져갈 때 양주 지역에서도 양주청년회와 금오청년회가 조직되었다. 1930년대에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김용기(金容基) 목사는 봉안마을의 ‘이상촌 운동’을 벌이는데,...
일제가 농촌진흥운동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한 농촌 관제 단체. 농촌진흥회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 관료-유지 지배 체제의 형성과 함께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발전시킨 주요 기구 중 하나이다. 양주진흥회도 일본인과 조선인 대지주의 가혹한 수탈에 대항하는 기구로서가 아니라 단지 지주와 소작인 간의 상호 부조와 농민의 자력갱생 등을 요구하는 기구로서 만들어졌다. 일제는 강점과...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한국청년회의소의 양주 지역 지부. 양주청년회의소는 국제청년회의소의 한국 지역 단체 중 하나이다. 국제청년회의소는 1915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발족된 지역 봉사를 위한 청년 단체가 1944년 국제적인 단체로 발전한 것이며 흔히 JC라고 약칭한다. 한국에서는 1951년 6·25 전쟁 당시 평택에 주둔중인 미 제5공군 정훈장교 매닝 스포츠우드 중...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3·1 운동 이후 무력만으로는 한국을 지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일제는 그때까지의 무단 통치 방식을 변경하였다. 조선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齊藤實]는 ‘문화의 발달과 민력(民力)의 충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른바 문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한편, 1920년대 초반 한국은 노동 운동, 농민 운동의 이념과 조직...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일제 식민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양주는 서울의 동북 방면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현재의 동두천시·남양주시·의정부시·포천시·구리시 등과 서울의 동북쪽이 모두 양주 지역에 해당되었다. 즉, 1912년 당시 양주 지역은 32면 343동리의 대규모 고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4년 면제 개편 때 양주는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