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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573
한자 楊州別山臺-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58년연표보기 - 문교부장관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61년연표보기 - 개인공로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65년연표보기 - 개인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66년연표보기 - 공보부장관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67년연표보기 - 국무총리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장려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69년연표보기 -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장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72년연표보기 - 문화재관리국장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문화공보부장관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75년연표보기 -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장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76년연표보기 - 문화재관리국장상 수상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중요무형문화재인증서 수여, 문화공보부장관
관련 행사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아시아민족예능제 참가 본부장상 수상
문화재 지정 일시 1964년 12월 7일연표보기 - 양주별산대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양주별산대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재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1년연표보기 - 양주별산대놀이마당 개관
놀이 장소 양주별산대놀이 전수회관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N37° 49′ 10.4332″ , E127° 01′ 51.1332″지도보기
놀이 장소 양주별산대놀이마당 -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 1399번길 47[유양동 262]지도보기
성격 탈놀이
노는 시기 사월 초파일, 단오, 추석 등의 명절이나 기우제
예능 보유자 노재영[옴중, 취발이]|김순희[해산모, 소무]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무형문화재

[정의]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탈놀이.

[개설]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과 중부 지방에 전승되어 온 산대놀이의 한 분파이다. 양주별산대는 200여 년 전에 양주 사람 이을축(李乙丑)이 서울 사직골 딱딱이패들에게 배워 양주에 정착시킨 것이다. 이을축은 양주 최초의 가면 제작가였다. 그는 양주별산대놀이를 주로 사월 초파일, 단오, 추석 때에 연희하였고, 그밖에 가뭄 때의 기우제(祈雨祭) 행사로 연출하였다.

[연원]

산대(山臺)는 산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서 수직으로 배치한 여러 개의 좁은 무대이다. 기암괴석 여기저기에 동굴과 절벽이 있고, 그곳에서 잡상(雜像)들이 널리 알려진 고사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산대에는 한 장소에 고정시켜 놓은 대산대(大山臺)와 밑에 바퀴가 달려 있어 이동할 수 있는 예산대(曳山臺)가 있다. 궁정에서 주관한 산대는 행사를 위하여 설치하였지만, 현재의 산대놀이는 궁정의 공연물을 계승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산대놀이는 연희자들이 그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산대’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별산대는 본산대와 구별하여 붙인 명칭이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놀이 전에 탈고사를 지내 제물과 제주를 음복하여 취기가 돌면 길놀이가 시작되는데, 서낭대와 탈들을 앞세우고 풍물을 울리며 마을을 순회한다. 놀이터는 양주 사직골로 불곡산 계곡 입구의 사방이 경사진 곳이 천연의 노천극장 구실을 하였다.

[놀이 방법]

양주별산대놀이는 모두 8과장으로 짜여 있다. 제1과장 ‘상좌춤’은 15~16세가 된 어린 중이 연희자와 관객들의 무사함을 기원하면서 사방신께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무이다. 제2과장 ‘옴중과 상좌’는 주로 옴중과 상좌의 재담으로 엮어진다. 옴중춤은 양주별산대놀이를 대표하는 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거드름춤과 깨끼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제3과장 ‘옴중과 먹중’은 옴중의 의관과 얼굴에 대한 재담을 나눈다. 옴중의 거드름춤과 먹중의 깨끼춤이 일품인데, 옴중과 먹중이 재담을 주고받으며 연희를 하고 있다. 이는 특권 계층의 권력 남발을 풍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에서는 초월적 능력을 가진 고승 연잎과 눈끔적이가 나타나 파계승 옴중과 목중을 벌한다. 눈끔적이는 연잎을 보필하는 사람으로 춤을 출 때 잡귀가 범치 못하도록 한다.

제5과장 ‘염불놀이’에서는 당시 타락한 종교 문화를 빗대어 중 행세를 하는 완보와 먹중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재담, 염불, 가사, 소리 등을 하면서 파계승을 풍자한다. 그밖에 제6과장 노장, 제7과장 샌님, 제8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 등으로 되어 있다.

연희의 내용은 산대도감 계통에서 보여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녀의 갈등, 양반에 대한 풍자와 모욕, 서민 생활의 빈곤상 등 당시의 현실 폭로와 특권 계급에 대한 반항 정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17세기 말 전문 놀이패가 궁정의 공연 문화가 쇠퇴하자 한양의 시정을 중심으로 민간 공연 문화를 발흥시켰다. 이와 같이 상업이 융성한 지역이었던 녹번, 애오개[阿峴], 노량진, 사직골의 본산대놀이가 그것이다. 당시 양주에서는 사직골 놀이패의 지방 공연 일정으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빈번해지자 양주 주민들은 스스로 가면을 만들어 산대놀이를 공연하였고, ‘양주별산대놀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당시 양주는 목사가 주재하는 1천 여 호의 고을이었다. 그 후 본산대놀이는 전승이 끊기게 되었고, 현재까지 전승되어 오는 것은 양주별산대놀이이다.

[현황]

현대에 와서 양주별산대놀이는 세시 풍속으로서의 의미와 기능은 거의 사라졌다. 과거에는 매년 4월 초파일, 5월 단오, 8월 한가위와 명절 연희 및 기우제에 공연되었으나 현재는 양주별산대놀이전수회관에서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상설 공연을 하고 있으며, 매년 5월 5일과 10월 5일에는 정기 공연을 하고 있다. 현재의 공연은 과거에 비해서 신명이 부족하고, 춤사위와 음악 장단이 빨라졌다. 성행위 장면과 외설적인 대사도 거의 생략되었다. 1964년 12월 7일 국가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양주별산대놀이(http://www.sandae.com/)
  •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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