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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401
한자 仇谷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정학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구곡역, 갑오개혁으로 폐지
구곡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

[정의]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개설]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구곡역(仇谷驛)은 고려 시대에는 춘주도(春州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속해 있으면서 양주·한양에서 춘주[춘천] 방면을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평구도(平丘道) 관할의 역 가운데 하나로서 한양에서 가평·춘천 방면을 연결하는 소로역(小路驛)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구곡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지방 통치를 위한 정령(政令)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외교 사행의 영송(迎送), 군사의 왕래 등 국가의 공적 행위가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는 교통·통신 기구 역할을 하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경기 양주도호부]에 “역이 6이니, 청파(靑坡)·노원(蘆原)·영서(迎曙)·평구(平丘)·구곡(仇谷)·쌍수(雙樹)”라고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경기도 양주목 역원(驛院) 부발참(附撥站)]에는 “구곡역상도면(上道面)에 있는데 동쪽으로 100리 떨어져 있고 춘천과 통하는 길로서 평구도에 속하며 말 5필, 이속과 남자 종이 17명, 여자 종이 1명”이라고 전한다.

[변천]

1457년(세조 3)에 이조의 건의로 각 도 역의 관할을 조정하고 정역찰방(察訪)을 두게 하였는데, 이때 구곡역쌍수역 등과 함께 경기·강원도 정역찰방 관할이 되었다. 춘천 등 관동(關東) 지방과 통하는 길에 있었던 구곡역에는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따르면 말 5필, 이속과 남자 종이 17명, 여자 종이 1명이 속해 있었다.

역 내지 역참은 조선 후기에 들어 역마(驛馬)를 함부로 이용한다든가 역전(驛田)의 사유화 등으로 인한 폐단이 가중되어 그 기능이 마비 상태에 놓이게 되자, 명나라의 예에 따라 파발(擺撥)을 설치, 이와 병행하여 운영되었다. 양주의 평구역을 중심으로 한 평구도와 그 소속의 구곡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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