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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06
한자 懶翁禪師浮屠-石燈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서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381년경 - 나옹선사부도및석등 건립 추정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320년연표보기 - 나옹선사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376년연표보기 - 나옹선사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1974년 9월 26일연표보기 - 나옹선사부도및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나옹선사부도및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회암사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지도보기
원소재지 회암사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
성격 부도|석등
관련 인물 나옹선사(懶翁禪師)
재질 석재[화강암]
크기(높이) 약 3.6m
소유자 회암사
관리자 회암사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檜巖寺)에 있는 고려 후기 나옹선사(懶翁禪師)의 부도(浮屠)와 석등(石燈).

[개설]

부도는 이름 높은 승려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된 묘탑(廟塔)이다. 통일 신라 하대에 선종(禪宗)이 전래되면서 조사(祖師)들의 부도를 건립하기 시작하였는데, 부도가 처음 조성되었을 때에는 사찰의 중심 사역(寺域) 내부에 위치하였다. 이후 사찰의 중심 사역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위치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나옹선사 부도(懶翁禪師浮屠) 역시 그러한 경향에 의해 당시 사찰의 중심 공간이었던 현재의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와 상당히 떨어진 외곽(外郭)에 위치하고 있다.

나옹선사[1320~1376]의 성은 아씨(牙氏), 속명은 원혜(元惠),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강월헌(江月軒), 시호는 선각(先覺)이다. 원(元)에서 유학하면서 스승인 지공(指空)에게서 무심선(無心禪)을 익히고 당시 중국 불교의 대세였던 임제종(臨濟宗)을 배웠다. 15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고려로 귀국하여 1372년(공민왕 21) 왕사(王師)에 올라서 유학을 통해 수학(修學)한 새로운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당시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1372년 국왕의 후원을 바탕으로 회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다가, 1376년(우왕 2)에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하였다.

[건립 경위]

나옹선사의 비(碑)인 선각왕사비(禪覺王師碑)의 내용에 따르면 나옹이 입적하고 4년 후인 1381년(우왕 7)에 세워졌다고 하므로, 나옹선사 부도 역시 이때 함께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나옹선사 부도회암사 경내에 자리하며, 그 앞으로 나란히 석등이 놓여 있다. 나옹선사의 부도와 함께 회암사에 남아 있는 지공선사 부도와 비, 그리고 무학대사 부도와 비는 나란히 함께 세워져 있는데 비해서, 나옹선사 부도와 그 비인 선각왕사비는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형태]

부도 앞에 네모난 석상을 놓고, 그 앞쪽에 석등을 배치하였다. 나옹선사 부도의 높이는 약 3.6m이다. 형태는 우리나라 부도의 기본적인 형태인 팔각(八角)을 이루고 있지만, 이전 시기의 부도와는 달리 탑신부가 구형(求型)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탑신에 비해서 기단부와 옥개부가 크고 높은 편이라는 것도 차이점이다.

팔각의 지대석(址臺石)은 2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하대석은 팔각으로 4매의 돌을 결구하였으며, 기단 중대석은 팔각형에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편평하게 하고 모서리의 모를 죽여서 구형(求型)에 가깝도록 표현하였다. 탑신은 넓적하게 둥근 모양으로, 표면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옥개석의 밑면은 목조 건축의 지붕과 유사한 구조로 받침이 보이지만, 팔각의 윗면에는 기왓골이 표현되지 않았다. 옥개석은 처마와 추녀가 위로 살짝 들려져 있다. 상륜부는 둥근 보륜(寶輪)을 4단으로 쌓고 노반(露盤)과 보주(寶珠)를 놓았다.

[현황]

1974년 9월 26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나옹선사 부도는 이전 시기까지의 전통적인 부도 형태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으면서 탑신부가 구형을 이루는 것은 나옹선사의 스승인 지공선사(指空禪師)의 부도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특징으로 고려 말기에 처음 나타났으며, 이후 조선 전기에 새로운 부도 형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한편 나옹선사 부도 앞에는 앞쪽으로 2개, 뒤쪽으로 1개의 네모난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널따란 판석을 놓아 석상(石床)을 마련하였는데, 일반적으로 부도 앞에 석상을 두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옹선사 부도 앞에 놓인 석등은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형태를 띠는데, 화사석(火舍石)과 간주석(間柱石)이 옥개석에 비해서 매우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어 투박해 보이기도 한다. 단순한 형태의 석상과 석등을 예배와 배례의 대상물 앞에 일직선을 이루면서 배치하는 것은 고려 후기 공민왕릉(恭愍王陵)의 경우처럼 왕릉의 구조와 연관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1.19 내용 수정 문장 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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