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뛰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206
영어공식명칭 Dalbong-ttwig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중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멸 시기/일시 1950년대 - 달봉뛰기 소멸 추정
재현 시기/일시 1981년|1983년 - 영덕문화원장이었던 서두석의 주도로 재현, 연행
노는 시기 정월대보름 전날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남정리에서 행해진 민속놀이.

[개설]

달봉뛰기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남정리에서 두 개의 달봉을 가지고 벌이는 대동놀이이다. 남정리는 '한 골목'을 경계로 상리와 하리로 나뉘는데, 두 마을은 각기 편을 이루어 달봉뛰기를 통해 경쟁하였다. 육상의 계주처럼 이어 던지기의 형태로 진행되며 지신밟기, 깃대 높이 세우기 등의 경쟁이 수반되는 놀이이다.

[연원]

달봉뛰기의 기원은 남정리 마을에서 음력 정월 정월대보름 전날 동신제(洞神祭)의 의식으로 행하여졌다고 한다. 과거 남정리는 화재가 잦고 가뭄이 심해 흉작을 면치 못하였는데, 어느 날 지나가는 나그네가 "마을 앞산이 화산이므로 화기가 비치는 곳에 단지를 묻고 해마다 소금물을 갈아 부어 마르지 않도록 하면 가뭄이 가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화산 꼭대기에 단지를 묻고 정월 열사흘날 남호리 앞바다에서 바닷물을 길어와 부었으며, 보름날 단지를 묻어 둔 곳에서 풍악을 울리며 지신을 밟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달봉뛰기의 유래는 한 쌍의 남녀가 정월대보름날 달맞이를 가기 전 ‘노적봉’이라 불리는 막대 둘을 세워두었다가 그중 남자가 세운 것을 올라가기 전 여자가 세운 것에 합쳐 놓으면서 놀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두 남녀는 달맞이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노적봉에 먼저 닿는 내기를 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마을 사람 전체의 놀이로 발전되었고, 편을 갈라 노는 놀이가 되었다고 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달봉뛰기에 사용되는 도구는 크게 간물단지와 노적봉으로 나뉜다. 간물단지는 화산에 묻어두는 소금물[간물]의 단이다. 간물단지는 모두 세 개를 묻었다. 정월 열사흘에 제관(祭官)은 산에 묻어 둔 간물단지에 이상이 없는지 살핀다. 이상이 있으면 남정면 남호리의 바닷물을 길어와 단지를 채웠다. 간물단지는 신성하다고 여겨 평소에는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다.

정월 열사흘에 마을의 상·하리 주민들은 노적봉을 만들기 위해 각각 15m에서 16m 사이의 곧은 원목을 구한다. 이를 ‘원낭구’라 칭한다. 원낭구 위로 가는 나무를 연결하고 끝부분에는 ‘지릅[삼대]’을 연결한다. 연결이 끝나면 원낭구와 가는 나무를 연결하는 부분에 수숫대와 한지를 장식하고, 상단에는 용 모양이 그려진 깃발을 연결한다. 상리는 황룡, 하리는 청룡 모양의 깃발을 달았으며. 각각 혼인을 앞둔 총각과 처녀로 여겼다. 만들어진 깃대의 높이는 보통 20m에 이르렀다. 깃대를 높게 만들어야 달봉뛰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여겼기에 서로 높게 만들거나, 상대방 깃대의 길이를 알아 보려는 시도도 적지 않았다. 여자가 깃대를 타 넘으면 그 부분이 꺾인다 하여 여자들이 접근하지 않도록 깃대를 지켰다.

[놀이 방법]

동제가 끝나면 산의 간물단지가 있는 곳으로 가 지신을 밟는다. 이때 먼저 지신을 밟는 쪽이 달봉뛰기에서 이긴다는 속설이 있다. 오후가 되면 상리의 노적봉을 하리의 노적봉에 옮겨 새끼를 묶는다. 이를 시집·장가 보낸다고 여겨 ‘신방 꾸민다’고 한다. 이후 하리 우두머리가 동장과 함께 ‘달봉’으로 불리는 방망이를 가지고 달봉재 봉우리로 올라간다. 주민들은 결승점인 동수나무까지 길을 따라 열을 짓는다. 올라갈 때 주민들은 '달보러 가세' 하며 노래를 부른다.

달이 떠오르면 동장이 ‘달 뜬다’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에 달봉을 가진 사람은 자기 편을 향해 달봉을 힘껏 던진다. 이후 다음 사람이 이를 주워 다시 힘껏 던져 최종적으로 동수나무에 도달하고자 한다. 어느 한쪽이 달봉을 동수나무에 맞추게 되면 승부가 나고, 이긴 마을은 그 해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한다. 놀이가 끝나면 두 노적봉을 풀어 원목을 보관한다. 이를 노적봉 푼다고 칭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달봉뛰기는 공동체의 신이 좌정하고 있는 곳을 향해 달을 상징하는 달봉을 던지고, 달의 생생력(生生力)을 동신(洞神)에게 옮겨서 공동체의 풍요와 다산(多産), 안과태평(安過太平)을 기원하는 놀이이다. 또한 달봉뛰기는 한국의 대동놀이 가운데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운 ‘먼저 도달하기형’에 속하는 놀이로도 의의를 가진다.

[현황]

달봉뛰기는 1950년대에 전승이 중단되었다가 1981년 당시 영덕문화원장이었던 서두석의 주도로 재현되었으나, 1983년에 한 번 더 연행된 뒤에 경비와 인력 동원의 문제 등으로 전승이 끊어진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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