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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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甲午義兵 |
영어음역 | Gabouibyeong |
영어의미역 | Righteous Army of Reform of 1894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강윤정 |
[정의]
1894년 일제의 경복궁 침탈을 계기로 안동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
[개설]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입하여 왕실을 농락하고 국권을 무너뜨리는 갑오변란이 일어나자 7월에서 9월 사이에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과 평안도 상원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이에 반대하는 의병이 일어났는데 이를 갑오의병이라 부른다. 이중 서상철(徐相轍)의 안동의병은 구한말 항일 의병의 효시로 평가된다.
[경과]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의진(義陳) 결성은 갑오변란이 발생하자 공주유생 서상철(徐相轍)이 1894년 7월 초에 안동 지역 일대에 의병 궐기를 호소하는 「호서충의서상철포고문(湖西忠義徐相轍布告文)」을 발송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격문의 요점은 7월 25일의 안동향교 거사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었으나 안동부사의 저지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서상철은 이에 굴하지 않고 비밀리에 안동 일대를 돌면서 2,0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서상철이 지휘하는 의진은 일본군 병참부대가 있던 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의 태봉을 공격 목표로 삼았는데 이는 태봉이 대구와 충주 그리고 서울을 잇는 병참선의 주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9월 1일 태봉에서 600여 명의 의병이 일본군을 공략했으나 일본군의 반격으로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무기를 빼앗기는 참패를 당하였다. 이후 서상철은 안동의진의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청풍 방면으로 후퇴했으나 일본군과 관군으로 구성된 의병토벌대에 쫓기던 중 9월 20일에 이르러 청풍전투에서 크게 패하면서 소멸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갑오의병은 안동 지역 유생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에 의해 발의되었지만, 대의명분을 중시하여 거병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여기에 동참한 안동인의 특성을 보여 주기에 충분한 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