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4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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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年運動 |
영어의미역 | Youth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윤정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일어났던 청년들의 사회운동.
[개설]
3·1운동 이후 대중의 힘을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항일 역량을 지속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조직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20년부터 각 지역에 청년회가 조직되어 계몽적인 성격을 가진 실력 양성 운동 및 문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안동 지역에도 1920년 들어 청년운동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하여 5월 안동청년회를 출발로 예안청년회·안동부인회·안동기독청년회·불교청년회·일직면금주회·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 등이 설립되었다.
[변천]
1925년 8월 안동 지역 8개의 청년회를 통합하여 안동청년연맹을 조직하였다. 1927년 들어 전국적인 청년운동 조직의 통합을 추진하여 서울에 본부를 두고 도에는 도연맹, 군에는 군동맹, 면에는 지부를 설치하였다. 안동에도 1927년 5월 15일 안동 지역 청년운동을 이끌어 갈 안동청년동맹이 결성되어 안동청년회의 조직과 인적·물적 자원을 흡수하였고, 와룡면·임하면·풍산면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이후 안동청년동맹은 신간회 안동지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1920년대 전반기 안동 지역 청년운동은 교육 활동·체육 활동·오락 활동과 같은 지덕체(智德體)를 중시하는 문화 운동이 주를 이루었다. 교육 활동은 강연회와 토론회 및 야학을 열어 청소년들의 지식을 계발하는 데 주요 목적을 두었는데, 청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계몽에도 영향을 주었다. 체육 활동으로 각종 경기나 운동회를 개최하였고, 오락 활동으로 풍속의 교화나 문화 선전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20년대 후반에 들어 청년운동 단체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독립운동 노선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단체는 풍산청년회였다. 이는 풍산소작인회를 이끌던 사회주의 지도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풍산청년회의 혁신 이후 안동의 청년 단체들은 혁신총회를 통해 단체의 성격을 바꾸어 나갔고, 면 단위 청년회를 묶은 청년연맹 결성을 추진하였다.
청년연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한 지방에서 청년 단체의 단결과 청년운동의 통일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청년 단체들은 문화 운동 실행 기관에서 민중 운동과 해방 운동의 선도 기관으로 전환을 시도하였다.
혁신된 청년연맹에서는 강령에 따른 구체적 실천 활동으로 독서회 조직, 무산 청년을 위한 프로청년문고의 설치, 소년단 조직을 통한 청소년의 사상 교육 등을 강화해 나갔다. 노동 야학을 설치하여 민중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고, 야학이 설치되지 않은 면에는 인근 면의 청년회원이 파견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의 사회사상을 농민에게 보급하였고, 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청년연맹의 기본 활동은 청년운동에 있었지만, 당시 안동의 경우 청년회원들 대부분이 농민이던 까닭에 농민운동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작인회가 조직되었던 풍산면·풍서면·와룡면 청년회원 중에는 풍산소작인회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안동의 청년운동이 어느 한 운동만으로 지칭할 수 없는 이유를 보여 준다. 즉 안동 지역 청년의 구성이 농민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연령 계층이 청년층과 장년층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