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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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晩燾殉國遺墟碑 |
영어음역 | Imando Sungugyuheobi |
영어의미역 | Monument of Yi Mand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규복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에 있는 이만도의 유허비
[개설]
향산 이만도(李晩燾, 1842~1910)는 퇴계 이황의 후손으로, 1866년(고종 3) 정시(庭試)에 장원 급제하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지자 예안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1910년 나라가 일제에 병탄되자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24일 만에 순국하였다. 아들 이중업(李中業)과 손자 이동흠(李棟欽)도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건립경위]
일제의 국권 침탈에 단식으로 항거하다 순국한 이만도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 뜻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1948년 향산유허비건립위원회에서 뜻을 모아 이만도가 순절했던 자리에 건립하였다.
[위치]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 청구마을 앞 도로변 단칸 맞배지붕의 비각 안에 유허비가 있다. 현재 유허비 주변은 향산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형태]
크기는 높이 133㎝, 너비 50㎝, 두께 22㎝이다.
[금석문]
앞면에는 ‘향산이선생순국유허비(響山李先生殉國遺墟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이만도의 단식과 관련한 후손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이만도가 강제로 음식을 먹이려는 일본 관리들을 꾸짖어 쫓아내는 내용 등이 새겨져 있다. 비의 제목은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썼으며, 뒷면의 내용은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