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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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屛山書院 |
영어음역 | Byeongsan Seowon |
영어의미역 | Byeongsan Private Confucian Academy |
이칭/별칭 | 병산서원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8년 3월 31일 - 안동 병산서원 사적 제26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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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병산서원 사적 재지정 |
성격 | 서원|교육기관 |
양식 | 팔작지붕|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조선 중기 |
정면칸수 | 7칸(만대루)|5칸(입교당)|4칸(동재·서재)|3칸(존덕사)|3칸(전사청) |
측면칸수 | 2칸(만대루)|2칸(입교당)|1.5칸(동재·서재)|2칸(존덕사)|1칸(전사청)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
전화 | 054-858-5929 |
홈페이지 | 병산서원(http://www.byeongsan.net) |
소유자 | 병산교육재단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원.
[개설]
안동 병산서원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류성룡은 본관이 풍산(豊山)으로, 1564년(명종 19) 사마시를 거쳐 도승지·예조판서·우의정·좌의정 등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시에는 영의정으로 왕을 호종하고, 성곽 수축·화기 제작을 비롯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으며,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1598년(선조 31) 북인들의 탄핵으로 한때 관작을 삭탈당하고 향리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국보 제132호인 『징비록(懲毖錄)』을 쓰는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고 다시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도학(道學)·문장·덕행·글씨로 이름을 떨쳤고 특히 영남 지역 후생들의 추앙을 받았다.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번지에 있다. 안동시 서남쪽에 있는 화산(花山)의 동남쪽 경사지에 남향하여 낙동강 건너의 병산절벽을 바라보고 있다.
[변천]
병산서원은 원래 안동 풍산현(豊山縣)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풍산류씨의 교육기관이었다. 1572년(선조 5) 류성룡이 현 위치인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로 이건하였다. 1607년(선조 40) 류성룡이 세상을 떠나자 후학들이 1614년(광해군 6) 존덕사(尊德祠)를 세워 류성룡의 위패를 봉안하고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류성룡의 위패를 여강서원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 다시 현 위치로 옮겨와 주향(主享)하고 있다. 병산서원은 철종 때 사액서원이 되었다.
[형태]
안동 병산서원 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경사지 아래쪽의 외삼문(外三門)인 복례문(復禮門)에 들어서면 왼쪽에 연못이 있고 건너편에 높은 석축(石築)이 있는데, 이 석축의 계단을 오르면 보기 드물게 큰 누각인 만대루(晩對樓)가 동서로 길게 놓여 있다.
누 밑을 지나 계단을 다시 오르면 마당 건너편에 강당인 입교당(立敎堂)과 그 앞 양측에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고 있는 강학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동재 뒤편 담장 밖에는 주사(廚舍)인 ‘ㅁ’자형 주택이 있다. 강당 뒤편에는 사당인 존덕사 공간이 전체의 중심축에서 약간 벗어난 오른쪽 높은 곳에 별도로 일곽을 이룬다. 사당 영역 좌측에는 장판각을, 우측에는 전사청을 두었다. 중심축 선상에 외삼문-누각-강당-내삼문-사당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달리 사당 공간이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는 점이 특이하다.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에 무익공(無翼工) 3량가 팔작지붕으로 꾸민 누각이다. 2층 누마루를 통간 우물마루로 꾸미고 그 주위에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돌렸다. 강당인 입교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중앙 3칸에 대청을 두고 그 좌측과 우측에 각 1칸씩의 온돌방을 두었다. 좌측 방 앞에는 쪽마루를 두고 우측 방 앞과 뒤에는 각각 툇마루와 벽장을 시설하였다. 높은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5량가 팔작지붕의 굴도리 장혀수장집이다.
동재와 서재는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은 대칭적 구성의 건물로 각기 정면 4칸, 측면 1.5칸 크기의 납도리 5량가 맞배지붕이다. 서재는 동재와 달리 큰방 앞과 대청 뒤의 쌍창이 오래된 기법인 영쌍창으로 되어 있다. 존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내부를 통간 우물마루로 꾸몄다. 화강석 기단 위에 정평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5량가 맞배지붕의 초익공계 건물이다. 내삼문·외삼문과 장판각, 그리고 전사청의 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의 3량가 맞배지붕이다. 내삼문은 무익공으로 꾸몄고, 나머지 세 건물은 납도리 장혀수장집으로 꾸몄다.
[현황]
안동 병산서원은 1978년 3월 31일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는 병산교육재단이며 안동시가 관리하고 있다. 매년 봄가을에 병산서원의 가장 큰 행사인 춘추향사제가 치러진다. 향사일은 각각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과 음력 9월 초정일이다.
[의의와 평가]
안동 병산서원은 예로부터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다. 건립 당시의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