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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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停寺靈山庵 |
영어음역 | Bongjeongsa Yeongsanam |
영어의미역 | Yeongsanam of Bongjeo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봉정사길 2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효걸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11월 1일 - 봉정사영산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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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봉정사영산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암자 |
건립시기/일시 | 19세기 말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봉정사길 222] |
소유자 | 봉정사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봉정사에 딸린 조선 후기 암자.
[개설]
봉정사영산암은 자연 친화적이며 유가적 생활공간과 닮은 특이한 불교 암자이다. 영산암이라는 이름은 석가불이 『법화경』 등의 경전을 설법하였던 영취산에서 유래하는데, 보통 줄여서 영산이라 부른다. 석가불을 봉안하고 있는 대웅전의 「후불탱화」는 영취산 위의 『법화경』 설법 장면을 그린 것인데, 흔히 「영산회상도」라고 한다. 봉정사영산암은 영취산에 모여 석가불의 설법을 듣는 나한에 초점을 두어 응진전을 중심 건물로 보기 때문에 영산암이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변천]
봉정사영산암의 구체적인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 등의 사료로 볼 때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봉정사영산암 입구 위에 걸린 ‘우화루’라는 현판은 원래 극락전의 입구에 달린 것이었는데, 1969년 보수 때 극락전 출입문과 담을 허물었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달았다.
2000년 봉정사 대웅전의 해체·수리·복원에 이어 봉정사영산암도 대대적인 수리를 하여 최근 정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리하는 과정에서 응진전 외벽의 불화가 없어졌으며, 우화루 아래층 좌우의 칸은 과거에 『화엄경』 등의 장판을 보존하였던 곳이었는데, 최근 장판들도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형태]
봉정사영산암은 응진전, 송암당, 우화루, 삼성각 등 몇 개의 건물이 네 면을 울타리처럼 두른 모양으로 폐쇄적인 형상을 띠고 있다. 나한을 모시는 응진전, 산신·독성·칠성신을 함께 봉안한 삼성각, 앞면을 가로지르는 2층 누각형 건물인 우화루, 그 밖에 영화실과 승려들의 수행 및 거처인 송암당, 관심당 등 5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우화루의 낮고 비좁은 누하문을 들어서면 구릉지의 자연적 모습이 그대로 봉정사영산암의 뜰이 된다. 자연 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여 그대로 암자의 분위기를 자연에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불교의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마치 유가 선비들의 생활 공간 가까이에 만든 정자에 있는 기분이 든다.
봉정사영산암 외곽은 우화루, 송암당, 관심당, 영화실이 모두 마루로 연결되어 영산암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1969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 이전의 봉정사의 모습과도 같다. 고금당, 화엄강당, 무량해회의 삼면이 모두 마루로 연결되어 마당에 내려서지 않고 건물 간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였는데, 조선조 후반까지의 봉정사 가람 배치는 이와 같이 삼면을 마루로 서로 연결한 특징적 모습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봉정사영산암은 봉정사 안의 또 다른 작은 봉정사라 할 수 있다.
[현황]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봉정사이다.
[의의와 평가]
봉정사영산암의 자연과 조화된 분위기와 공간 배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건축적으로 크게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없으나 삼성각 앞의 조경 수법은 경직될 수 있는 공간을 부드럽게 유도한 것으로 매우 뛰어난 공간 처리 수법으로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