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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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禮安李氏忠孝堂 |
영어공식명칭 | Head Residence of the Yean Yi Clan |
영어음역 | Yeanyissi Chunghyodang |
이칭/별칭 | 백원당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189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1년 8월 30일 -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보물 제55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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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보물 재지정 |
성격 | 고가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551년(명종 6)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189 |
소유자 | 이준교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 가옥.
[개설]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은 풍은(豊隱) 이홍인(李洪仁, 1528~1594)이 1551년(명종 6)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형인 몸채와 ‘ㅡ’자형 별당인 쌍수당(雙修堂)으로 구성되었다. 쌍수당이란 당호는 충과 효를 한 집안에서 갖추었다는 뜻으로, 이홍인의 충과 그의 8세손 용눌재(慵訥齋) 이한오(李漢伍)의 지극한 효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충과 효는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 하여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을 백원당(百源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한오의 아버지는 증참판 이민정(李敏政)이다. 이한오는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는데, 김굉이 지은 행장에 의하면 “평소에는 어리석은 듯 둔한 듯한 선생이 어버이의 명을 받듦에는 재빠르고 날렵하여 쉽고 어려움을 가리지 않았으며, 어버이 시중은 일체 하인이나 종을 시키는 법 없이 몸소 받들었다”고 한다.
이한오는 아버지의 병환이 심하여 백약이 소용없었으나 잉어와 꿩이 특효라는 말을 듣고 엄동설한에 낚시를 드리우고 온종일 기다려 한밤중에 잉어를 구하였으며, 돌아오는 길이 칠흑 같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자 호랑이가 나타나 안광(眼光)으로 길을 인도하여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한다. 또한 뒷산에서 꿩 한 마리가 절로 날아들어 이치탕(鯉雉湯)을 다리니 이한오의 아버지가 먹고 쾌유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효행이 뛰어났다.
[위치]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189번지에 있다. 뒤로는 나지막한 야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드넓은 풍산들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은 이홍인이 1551년(명종 6)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홍인은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다 임진왜란 때 순국하였고, 이홍인의 8세손인 이한오는 효행으로 이름을 남겼다. 충효당이란 당호는 바로 이홍인과 이한오 두 사람의 충과 효를 기리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한 집안에서 충과 효가 겸전(兼全)하였다고 하여 집의 당호를 충효당이라 하였다. 또한 충과 효를 겸비하여 쌍으로 수신하였으므로 별당을 쌍수당(雙修堂)이라 하였다. 쌍수당 또한 이홍인의 충과 이한오의 지극한 효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은 1974년 해체한 후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은 오른편에 충효당 현판이 걸려 있는 ‘ㅁ’자형의 정침(正寢)과 왼편에 쌍수당과 백원당의 현판이 걸려 있는 정자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효당은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문이 없어 길에서 곧장 집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자연석을 적당하게 섞은 토담이 트인 곳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서면 중층 팔작집인 정자와 ‘ㅁ’자형의 평면을 한 정침이 풍산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집안으로 출입하는 기와 얹은 토담이 트여 있는 곳의 모양이 재미있는데, 왼편은 토담이 허물어진 듯 절개된 면이 가지런하지 않지만 오른편은 담장이 마당을 향하여 나선형으로 감겨 있다. 나선형으로 감겨 있는 담장 안은 화장실이다. 병산서원에서 볼 수 있는, 싸리나무를 엮어서 지은 화장실과 모양과 형태가 흡사하다. 하늘 열린 화장실이어서 안이 밝고 악취도 없으며 개방된 듯하면서도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아 은밀하다.
정침은 자연석을 3단~4단 정도 쌓은 죽담을 2층으로 놓아 바닥보다 덩그렇게 들어 올려 터를 잡았다. 살림집의 죽담을 2층으로 쌓은 예는 흔하지 않은 경우로 집 안에서 탁 트인 풍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 정침의 규모는 ‘ㅁ’자형으로 정면이 6칸, 측면이 5.5칸이다. 전면의 형태는 자연석으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각주를 세웠으며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공간 구성은 안채로 출입하는 중문을 중심으로 왼편에 3칸의 사랑 공간을 배치하고 오른편에 마구간과 방 1칸씩을 배치하였다. 사랑 공간은 1.5칸의 사랑방이 중문과 연이어져 있고 그 옆으로 역시 1.5칸의 사랑마루가 놓여 있다. 대개 사랑 공간이 3칸일 경우에는 2칸통의 방을 내고 1칸 크기의 사랑마루를 까는 것이 일반적이나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의 경우에는 방을 반 칸 줄이는 대신 사랑마루를 반 칸 늘여 마루의 기능을 확대하였다.
사랑방과 사랑마루는 쪽마루로 연결하여 출입에 불편함이 없도록 고려하였다. 사랑마루는 좌익사(左翼舍)와 연결되는데 작은 사랑방, 장 단지를 보관하는 장광, 협문이 각 1칸씩 배치되어 안채에 딸려 있는 부엌과 연결된다.
안채는 정면이 6칸, 측면이 1.5칸의 크기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공간의 구성은 왼편부터 부엌 1칸, 안방 2칸, 대청 2칸, 건방 1칸이다. 안방 앞에는 반 칸의 툇마루를 깔아 대청과 건넌방으로 이동하기가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안채를 구성하기 위한 기둥의 형태는, 전면 가운데 3개의 기둥은 싸리나무로 된 원형 기둥이고 나머지는 소나무를 쓴 사각형의 기둥이다. 또한 부엌의 내부에는 팔각형을 한 기둥이 하나 더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기둥을 볼 수 있다.
우익사(右翼舍)를 구성하는 3칸은 안채의 우측에 자리한 건넌방과 그 앞쪽에 반 칸의 아궁이를 설치한 부엌과 연결된다. 첫 번째 칸은 익사 높이의 중간 정도에 늘마루를 깐 공간과 그 옆으로 광 1칸, 협문 1칸으로 구성되어 ‘ㅁ’자형 건물의 전면 우측과 맞닿는다. 우익사는 늘마루와 광, 광 위에 부설되어 있는 다락 등 주로 집 안에서 사용하는 살림용품들을 갈무리하는 공간들로 배치되어 있다.
쌍수당은 정침의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 중층의 정자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자연석을 3단 정도 허튼층쌓기로 쌓아 죽담을 만들고 그 위에 자연석으로 초석을 놓았다. 기둥의 형태는 누하주의 경우에는 아름드리나무를 다듬지 않고 사용하여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자연스러우면서도 견고함이 느껴지며, 누상주는 건물 전면은 다듬은 원주를 썼고 후면은 각주를 사용하였다.
쌍수당은 왼편에 4칸의 마루방을 꾸미고 오른편에 1.5칸의 방과 반 칸의 통로를 내어 외부에서 정자로 올라 마루방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사용한다. 마루방은 판벽과 판문으로 벽체를 이루고 있어 개방형이 아닌 폐쇄형의 구조를 하고 있다. 전면과 좌측면·우측면에는 쪽마루를 부설하고 계자(鷄子) 난간을 둘렀다.
정자의 출입은 오른편 계단을 이용한다. 계단을 올라 정자에 오르면 마루방으로 연결되는 넉살무늬를 한 넌출문과 만나고, 그 오른편으로 광창과 눈꼽재기창을 겸해서 쓰는 문과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궁판 달린 세살문이 설치되어 정갈함을 준다. 방은 1.5칸의 통칸으로 뒷벽에 툇간을 달아 벽장을 만들어 가재도구를 갈무리하는 공간으로 쓴다. 마루방은 우물마루를 깔고 천장은 연등천장(椽燈天障)의 구조를 하고 있다. 충효당 현판은 정침의 사랑마루에 게첨되어 있으며, 쌍수당과 백원당의 현판은 정자에 걸려 있다.
[현황]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은 1971년 8월 30일 보물 제55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이준교이다.
[의의와 평가]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은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이홍인의 충과 이홍인의 8세손 이한오의 효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소박하고 서민적인 민가 성격을 띤 유서 깊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