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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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河回忠孝堂 |
영어음역 | Chunghyodang |
영어의미역 | Chunghyodang Tradition House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6[종가길 69]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4년 11월 14일 - 안동 하회 충효당 보물 제41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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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하회 충효당 보물 재지정 |
성격 | 고가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00년대 |
정면칸수 | 6칸(사랑채) |
측면칸수 | 2칸(사랑채)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6[종가길 69] |
소유자 | 류영하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 가옥.
[개설]
안동 하회 충효당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종택으로, 후손과 문하생들이 류성룡의 유덕을 기리는 위하여 지었다. 당호를 ‘안동 하회 충효당(忠孝堂)’이라 한 이유는 류성룡이 평소에 자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자주 하였기에 이를 받들어 이름 지은 것이다. 류성룡은 임종할 무렵 시 한 수를 지었는데, 평생 동안 부끄러운 일 많은 것이 한스럽다고 자신을 낮추며 자손들에게는 충과 효를 강조하였다.
류성룡이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숲 속의 새 한 마리는 쉬지 않고 우는데/ 문 밖에는 나무 베는 소리가 정정하게 들리누나/ 한 기운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도 우연이기에/ 평생 동안 부끄러운 일 많은 것이 한스러울 뿐/ 권하노니 자손들아 꼭 삼가라/ 충효 이외의 다른 사업은 없는 것이니라.(林間一鳥啼不息 門外丁丁聞伐木 一氣聚散亦偶然 只恨平生多愧怍 勉爾子孫須愼旃 忠孝之外無事業)’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6번지[종가길 69]에 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남촌을 대표하는 안동 하회 충효당 건너편에는 풍산류씨 대종가인 양진당(養眞堂)이 있고, 원지산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서향으로 앉아 있다.
[변천]
안동 하회 충효당은 1600년대에 건립되었다. 류성룡의 손자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 1598~1674)가 류성룡의 학덕과 업적을 숭모하기 위하여 유림과 제자들로부터 성력(誠力)을 모아 먼저 내당을 이룩하였고, 류성룡의 증손인 눌재(訥齋) 류의하(柳宜河, 1616~1698)가 외당을 완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증축한 부분은 ‘ㅁ’자형에서 돌출된 사랑방 우측 1칸과 사랑 대청을 비롯한 5칸이다. 행랑채는 류성룡의 8세손 류상조(柳相祚)가 지은 것이다.
[형태]
총 52칸의 건물로, 행랑채 뒤편에 조금 떨어져 ‘ㅁ’자형 안채와 안채 앞쪽 우측에 연접되어 돌출한 ‘ㅡ’자형 사랑채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사랑채 뒤쪽에는 별동을 이룬 사당이 있고, 오른쪽 대지의 가장 깊은 곳에는 류성룡의 유물 등을 진열·보관하고 있는 영모각이 있다.
행랑채는 모두 12칸으로 사랑채의 중심선과 거의 일치하는 곳에 솟을대문의 대문간을 내었다. 사랑채는 4칸 크기의 사랑 대청을 가운데 두고 좌측에는 사랑방과 침방을 앞뒤에 놓고, 우측에는 작은 마루와 방을 앞뒤로 두었다. 작은 마루는 우측만 개방하고 앞쪽과 좌측은 각기 골판문(骨板門)과 굽널띠살문을 달아 막았다. 이는 서향인 집에 여름날 오후 따가운 햇볕이 드는 것을 막고, 겨울에 들이치는 북서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작은 마루와 방 사이에 시설된 조그마한 들창과 대청과 방 사이에 나 있는 아주 낮은 외여닫이창도 방풍을 위한 것이다. 사랑 대청 배면 좌측 칸에 머름 없이 키 큰 굽널띠살문을 내어 안채와 뒤뜰을 드나들 수 있게 한 것도 흔치 않은 예이다. 전면과 우측면에는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돌려 건물의 격을 높였다. 대부분 원주를 세우고 부분적으로 주두를 얹은 5량가의 소로수장집으로, 옥개부는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사랑채 좌측 내외(內外) 담에 나 있는 협문(夾門)을 통하여 안채 중문간에 들어서면 높은 기단 위에 가로놓인 안방과 안대청이 안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그 좌측과 우측에 좌익사(左翼舍)·우익사(右翼舍)가 1단 낮게 자리 잡고 있다. 안방 앞에 전퇴(前退)를 들여 동선의 연결을 꾀하고, 안방 부엌에 접한 좌익사와 우익사 통로 부엌 부분을 2층 구조로 하여 그 상부에 수납공간을 마련하였다.
안방 상부에도 다락을 두는 등 큰 살림살이에 필요한 많은 수납공간을 확보해 두었다. 몸채 전면에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에는 모두 방주를 세웠다. 원주 상부를 정성 들여 초각한 무익공(無翼工)으로 하고,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네모꼴의 화반을 두었다.
가구는 5량가로 종보 위에는 첨차(檐遮)와 소로를 짜 넣은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하였다. 대청·방·상부 다락 등 여러 곳에 안동 하회 충효당의 건립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고식(古式)의 영쌍창이 시설되어 있다. 사당은 앞쪽에 삼문(三門)을 내고 서향인 본채와는 달리 남향으로 앉혔다.
[현황]
1964년 11월 14일 보물 제41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류영하이다.
[의의와 평가]
안동 하회 충효당은 지을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어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