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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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山洪氏 |
영어의미역 | Pungsan H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김복영 |
세거지 |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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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3세기 중엽 |
성씨시조 | 홍지경(洪之慶) |
[정의]
홍지경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의 풍산홍씨는 시조 홍지경(洪之慶)이 안동 풍산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안동의 토성 중의 하나이다.
[연원]
홍지경이 1242년(고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국학직학에 이르렀으며 안동 풍산에 정착하였다. 홍지경의 아들로 고려 첨의사인을 지낸 홍애(洪崖) 홍간(洪侃, ?~1304)는 시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는데 홍간의 시는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 실려 전한다. 홍간의 아들 홍유(洪侑)는 충열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삼관대제학을 지냈고 홍유의 아들 홍연(洪演)도 문과에 올라 충숙왕 때 보문각대제학을 지냈다.
조선 정조 때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시조 홍지경의 처 순천김씨(順天金氏)의 묘비에 “자손이 번성하고 과신에 올라 생원 진사 310여명, 문과 급제자 116명, 무과 급제자 90여명, 정승이 5명, 판서 30명, 시호를 받은 이 30명, 수령 방백으로 지방관으로 나가서 나라에 봉사한 이 등은 이루 다 적을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풍산홍씨는 지금도 충북 청원 일원, 전남 나주 일원, 충남 천원 일원, 강원 원주 원성 일원, 경남 양산 일원에 집성촌을 이루고 옛 명망을 이어가는 명문거족이다.
[현황]
현재 안동에는 이들 홍지경, 홍간, 홍유, 홍연 4대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현재의 풍천면 신성리에는 시조 3대의 묘소만 있을 뿐 풍산홍씨 후예는 한 집도 없고 안동 지역 어디에 몇 집이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임하면 천전리 뒷산에 있는 홍연(洪演)의 묘는 오래도록 실전되었다가 홍연의 7세손 홍방(洪滂)이 경상감사 재직시 찾아서 묘역을 수축하고 비를 세웠다. 비문의 “여말에 자손이 삼가, 남평, 고양 등지로 이거하고 옛 기지를 지키고 살던 후손은 잔멸되어 묘소도 수호할 수 없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관향의 풍산홍씨는 오래전부터 쇠퇴하여 이렇다 할 흔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관련유적]
풍천면 신성리 마을 입구 도로변 암벽 위에 홍간의 창암정(蒼巖亭)과 풍산홍씨세장지지(豊山洪氏世葬之地)라고 세긴 암각서가 있으며 앞을 흐르는 개울 건너편 마을 뒷산에 홍지경 3대의 묘소가 있다. 임하면 천전리 속칭 절골 뒷산에 홍지경의 증손 홍연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