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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춘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38
한자 權春蘭
영어음역 Gwon Chunnan
이칭/별칭 언회(彦晦),회곡(晦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539년(중종 34)연표보기
몰년 1617년(광해군 9)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청송군수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회(彦晦), 호는 회곡(晦谷). 아버지는 권석충(權錫忠), 어머니는 함창김씨(咸昌金氏)로 김원석(金元碩)의 딸이다.

[활동사항]

권춘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서 태어났다. 14세에 백담(柏潭) 구봉령(具鳳齡)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이후 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 나아가 배움을 청하였으며 류성룡(柳成龍), 김성일(金誠一), 정경세(鄭經世) 등과 교유하였다. 23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35세 때인 1576년(선조 3)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 성균관학록을 거쳐 예문관검열, 사헌부감찰, 대동도찰방,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김윤명(金允明)의 의병에 가담하였다. 1595년 이후 내직으로 사헌부장령, 세자시강원필선, 사헌부집의, 세자시강원보덕 등에 재임하였으며 외직으로 영천군수와 청송부사에 부임하였으나 벼슬에 오래 머물지 않고 진퇴를 반복하였다. 향촌에 물러나 손수 지은 감원정사(鑑源精舍)에 거처하며 학문을 닦고 저술을 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또 스승 구봉령의 유문(遺文)을 교정하여 완고(完稿)로 만들었고, 사림에서 구봉령을 모시기 위하여 주계서원(周溪書院)을 건립할 때 앞장섰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1845년(헌종 11) 후손 권엽(權曄)이 편집·간행한 『회곡집(晦谷集)』이 있다. 문집 중 스승 구봉령에게 올린 「상례문목(喪禮問目)」은 예학(禮學)에 관한 학문적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타 『진학도(進學圖)』과 『공문언행록(孔門言行錄)』을 저술했다.

[묘소]

묘소는 안동의 사니산(師尼山) 덕여동(德輿洞)에 있다.

[상훈과 추모]

주계서원(周溪書院)에 이어 여강서원(廬江書院), 삼계서원(三溪書院), 용산서원(龍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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