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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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弘準 |
영어음역 | Yi Hongjun |
이칭/별칭 | 군식(君式),눌재(訥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배종석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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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성별 | 남 |
몰년 | 1523년 |
본관 | 경주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식(君式), 호는 눌재(訥齋).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이승직(李繩直), 아버지는 이시민(李時敏),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현감을 지낸 권계경(權啓經)의 딸이다. 형이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이다.
[활동사항]
이홍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합격했다. 연산군의 정사가 위태로움을 보고 지은 시에서 “삶이 없으면 죽음도 없는데, 삶이 있으니 죽음도 있는 게지. 생사는 모두 아득한데, 조물주는 시작과 끝이 없구나.”라고 읊었다. 그 뒤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형 이종준이 참변을 당하자 세상사에 뜻을 버리고 가족을 이끌고 안동부 내성현(奈城縣,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일대)으로 내려와 자취를 숨겼다.
향리에서 가례(家禮)를 준수하고 남전여씨(藍田呂氏)의 유규(遺規)를 바탕으로 내성동약(奈城洞約)를 행하면서 후진을 깨우쳐 내성현의 기풍을 크게 바꾸었다. 내성동약의 좌목(座目)에는 서로 준수할 것을 맹세한 사람들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어서 당시 내성현을 주도하고 있던 양반 사족들의 향안으로 볼 수도 있다. 이홍준은 은덕(隱德)으로 문장을 만들어 질박함을 감추고 있는 데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술에 취한 듯 몽롱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저술 및 작품]
문집 『눌재선생유고(訥齋先生遺稿)』가 『용눌재양선생유고(慵訥齋兩先生遺稿)』에 수록되어 전한다.
[묘소]
묘소는 내성현(奈城縣) 북쪽 문수산(文殊山) 아래 은봉(銀峯) 동쪽 서향의 언덕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한동(金翰東)이 묘갈음기(墓碣陰記)를, 김형모(金瀅模)가 행장을 지었다. 향리의 사림들이 형 이종준과 함께 백록리사(柏麓里社)에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