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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80
한자 張興孝
영어음역 Jang Heunghyo
이칭/별칭 경당(敬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안병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564년(명종 19)연표보기
몰년 1633년(인조 11)연표보기
본관 안동

[정의]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경당(敬堂). 아버지는 부장(部長) 장팽수(張彭壽),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활동사항]

장흥효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김성일(金誠一), 류성룡(柳成龍)을 사사하고, 뒤에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평생토록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제자가 수백 명에 달하였다. 1633년에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교지가 도착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장흥효는 역학(易學)을 깊이 연구하여 호방평(胡方平)의 『역학계몽통석(易學啓蒙通釋)』의 「분배절기도(分配節氣圖)」를 보고 오류를 의심하고 깊이 연구하여 「십이권도(十二圈圖)」를 추연(推演)하였다. 또 「십이권도」에 12월을 배열하고 24절후를 분배하고 또 원회운세(元會運世)와 세월일진(歲月日辰)의 수를 더하여 「일원소장도(一元消長圖)」라고 하였다. 장현광(張顯光)이 「일원소장도」을 보고서 “참으로 전인이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하였다.”라고 극찬하였다. 장흥효의 학문은 외손인 이휘일(李徽逸), 이현일(李玄逸) 형제를 통하여 뒷날 영남 퇴계학파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경당집(敬堂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경광서원 서쪽 기슭에 있다.

[상훈과 추모]

지평에 추증되고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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