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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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洛 |
영어음역 | Gim Ra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43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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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43 |
성별 | 여 |
생년 | 1862년 |
몰년 | 1929년 |
본관 | 의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아버지는 경상도 도사(都事)를 지낸 김진린(金鎭麟, 1825~1895)이며, 만주 독립군 기지 개척의 지도자였던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큰오빠이다. 김락은 1862년(철종 1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4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김락은 1880년 만 18세의 나이로 안동시 도산면 하계마을에 자리 잡은 진성이씨 문중으로 시집을 갔다. 남편은 당시 양산군수를 지내던 향산 이만도(李晩燾, 1842~1910)의 맏아들 이중업(李中業, 1863~1921)이었다. 1896년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전개되자, 시아버지인 이만도는 예안 의진(義陣)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10년에는 24일 동안 단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 이중업은 1919년 제1차 유림단 의거(파리장서) 등을 이끌다가 1921년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인 이동흠(李棟欽)·이종흠(李棕欽)과 사위인 김용환(金龍煥)·유동저(柳東著)도 조국 광복을 위해 끊임없이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김락 자신도 57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1919년 안동 예안면 3·1운동에 참가하였다. 체포되어 취조를 받던 중 고문으로 인해 두 눈을 실명하였다.
김락이 참가한 예안면 시위는 안동 지역에서 대규모 군중이 최초로 만세 시위를 일으킨 것으로 2차에 걸쳐서 일어났다. 1차 시위는 3월 17일이며, 2차 시위는 3월 22일이었다. 그녀는 실명한 이후 남편 이중업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으며, 두 아들과 사위들의 항일투쟁을 오직 귀로밖에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두 아들이 제2차 유림단 의거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나온 지 2년 뒤인 1929년 2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