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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721
한자 李鳳羲
영어음역 Yi Bonghui
이칭/별칭 이계동(李啓東),이상훈(李相勳),이상희(李相熙),이경식(李京植),이기동(李基東),덕초(德初),척서(尺西)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류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68년연표보기
몰년 1937년연표보기
본관 고성
대표경력 신흥학교 교장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고성(固城). 이계동(李啓東)·이상훈(李相勳)·이상희(李相熙)·이경식(李京植)·이기동(李基東)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자는 덕초(德初)이고, 호는 척서(尺西)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동생이다. 1868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37년 향년 70세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1909년 4월 구국 계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형 이상룡과 함께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설립하여 민중들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데 노력하였다. 1911년 이상룡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고향인 안동을 떠나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이봉희는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 사람들이 만주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만주에서는 농업과 민족교육 장려를 위한 독립운동 단체인 경학사(耕學社)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신흥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독립운동가 양성에 주력하였다. 1919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920년 광복단(光復團) 서간도 지역 외교원으로 임명되어 중국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한인들의 농토 개척권을 허가받는 등 동포들의 생활 기반을 안정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이후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하여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 사회주의자들을 중국공산당에 가입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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