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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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花寺 |
영어음역 | Yeonhwasa |
영어의미역 | Yeonhwa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53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순임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 소속 사찰.
[건립경위 및 변천]
연화사는 1981년 안동 하회마을 주민들의 지원에 힘입어 건립되었다. 특히 충효당(忠孝堂) 종부와 윤순계의 힘이 컸다고 한다. 윤순계는 오대산의 월정사(月精寺)와 경상북도 봉화의 각화사(覺華寺) 등지에서 생활하다가 1950년대 말 경상북도 안동 지역으로 옮겨와 암자를 짓고 생활하였다고 한다. 이때 암자의 명칭을 연화사라고 하였다.
윤순계가 안동 하회마을에서 암자를 지은 이유는 하회에서 절터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인데, 고려시대에는 장안사(長安寺)라는 절이 있었고 그 후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윤순계는 암자 생활을 계속하다가 절을 짓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과 상의한 후 1980년 경상북도 안동의 대원사(大圓寺)에 있는 승려 혜명을 초빙하였다. 그리고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1981년부터 불사를 시작하였다. 이때의 신도회장은 류시덕으로 추진회장을 겸하였다.
1981년 3월 혜명의 제자인 도성을 불러 같이 불사를 하였고, 1983년 요사채를 건립하였다. 같은 해 윤순계가 죽었으나 슬하에 자녀가 없어 도성이 현재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연화사는 윤순계가 있을 때에 태고종에 가등록하였다가 도성이 온 후인 1983년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등록하였다.
[활동사항]
법공양과 4월 초파일 등의 불교 행사를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다.
[현황]
연화사는 안동 하회마을 주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찰로, 건물은 총 3동이다. 연화사 입구에서 요사채와 식당을 지나면 사찰 내의 다른 지대보다 다소 높은 둔덕이 나온다. 대웅전은 둔덕 위에 시멘트로 기단을 만든 후 그 위에 지은 건물로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공포는 익공(翼工) 양식이며, 기둥은 원기둥으로 화강암을 다듬은 원형 주춧돌 위에 세웠다.
대웅전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겹처마를 썼으며 정면의 문은 여닫이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면에 계단을 내었으며 단청이 되어 있다. 대웅전 내부에는 뒤로 퇴를 내어서 나무로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여 양쪽에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을 협시보살로 두었다. 불상의 뒷면에는 「후불탱화」를 두었고 우측에는 「신중탱화」를, 좌측에는 「칠성탱화」와 「산신탱화」를 두었다. 대웅전 천장에도 단청을 하였다.
대웅전 왼편으로 내려오면 연화선원이 있다. 연화선원이 있는 곳은 원래 윤순계가 암자를 지어서 기거하던 곳인데, 윤순계가 죽은 후에는 아무도 기거하지 않아 암자가 노후해지자 도성이 개축한 것이다. 건물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었으며 현대식 팔작지붕으로 기와를 얹었다. 요사채는 연화사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익공 양식의 공포와 사각기둥을 사용하였다. 처마는 겹처마로 하였고 처마 밑에 ‘화산고찰’이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
그 밖에 요사채에서 4m 정도 떨어진 곳에 탑 1기가 있다. 이 탑은 여러 곳에 흩어진 탑의 각 부재를 모아서 복원한 것이라 형태가 매우 조잡하다. 기단은 2층으로 되어 있으나 시멘트로 만들었으며, 그 위의 탑신은 형태에 맞지 않은 것을 얹었다. 탑의 기단으로 보이는 부재를 1층 옥개석으로 사용하였으며, 위의 탑신은 시멘트로 처리하였다. 탑 옆에는 비석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건립한 연화사 중건비로 비문은 도성의 사부인 월공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