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09 |
---|---|
한자 | 楊廣道 |
영어의미역 | Yangkwang-d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여성구 |
[정의]
1018년부터 1395년까지 경기도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개설]
양광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행정구역으로, 양주(楊州)와 광주(廣州)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들어졌다. 5도 가운데 서열 1위에 위치하며, 지금의 경기도 남부 지역과 강원도 일부, 충청도 지역을 관할하였다.
[제정경위 및 목적]
995년(성종 14)에 전국을 강남도·관내도·삭방도·산남도·영남도·영동도·중원도·패서도·하남도·해양도의 10개 도로 편성하였다. 1018년(현종 9)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0개의 도를 양광도·경상도·전라도·교주도·서해도 등 5도와 군사적으로 중시되던 함경도와 강원도의 일부 지역의 동계와 평안도 지역의 서계를 설치하였다. 이로써 현종 대에 5도양계의 군현제를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를 확립하게 되었다.
[변천]
1106년(예종 1) 10도를 고쳐서 1경(京)과 5도양계로 할 때 관내도[양주·광주 소속 주현], 충원도[충주·청주 소속 주현], 하남도[공주·운주 소속 주현] 등 3개의 도를 통합하여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로 만들었다. 1171년(명종 즉위년)에 다시 양광주도와 충청주도를 분할하였다가 곧 합쳤다. 1217년(고종 4) 이후로는 주로 충청도라 불렸으나, 1309년(충선왕 1)부터는 다시 양광도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1314년(충숙왕 1)에 양광도가 정식 명칭이 되었다.
1356년(공민왕 5) 다시 충청도로 개칭되었다가 양광도로 환원되어 고려 말까지 이른 듯하다. 조선시대에는 1395년(태조 4)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양주와 광주 등이 경기도에 포함되어 양광도라 부를 근거가 없어졌다. 이에 충주와 청주에서 한 자씩 따서 충청도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에 따르면 도내에 경(京) 1개[남경·양주], 목(牧) 3개[광주목·충주목·청주목], 부(府) 2개[안남도호부·천안부]가 있었으며, 이들에 속한 군이 27개, 현이 78개가 있었다.
또한 5개의 영군(領郡)[인주·수주·원주·공주·홍주]과 이들 영군에 속한 속군(屬郡) 22개, 3개의 영현(領縣)[강화현·가림현·부성현]과 이들 영현에 속한 속현(屬縣) 75개가 있었다. 각 도의 장관으로 안찰사가 파견되었는데, 이후 안렴사-제찰사(提察使)-안렴사-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안렴사 등으로 수차례 변경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관찰사제로 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