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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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城 |
영어음역 | Yeonse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준호 |
성격 | 고지명|별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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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안산의 별칭.
[명칭유래]
안산시가 별호(別號)인 연성으로 불리기 시작한 때는 1463년(세조 9)부터였다. 조선 초기 강희맹(姜希孟)이 안산의 별서(別墅)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연꽃을 심은 뒤부터 연성(蓮城)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관련기록]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에 의하면, 좌찬성 강희맹이 1463년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가 되어 중국의 난징[南京]을 다녀오는 길에 중국에서도 자태가 곱기로 이름난 항저우[杭州] 전당강(錢塘江) 기슭에 자생하는 연꽃인 전당홍(錢塘紅)의 씨와 뿌리를 가져와 안산의 별서에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이 꽃이 향촌에 점점 퍼지기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연성이란 별호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성과 관련하여 1797년(정조 21) 8월 16일 정조는 화성에 모신 아버지인 장조(莊祖), 즉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 행행 길에 하룻밤 안산별궁(安山別宮)에 묵었다. 이때 정조는 ‘소반 같은 땅 모양 일만 봉우리 연꽃과 같고/ 물고기라도 전당강과 비교치 말라/ 천하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안산이라 했는데/ 해마다 벼까지 잘 여물어 풍년이라네[地勢盤如萬朶蓮 尋常魚蟹不論錢 生居最說安山好 況復穰穰大有年]’라는 어제시(御製詩)를 내려 군민들을 효유(曉諭)하였다.
정조의 이같은 어제에 대해서 신료들이 화답하여 시를 지어 올렸다. 이와 관련해서 윤행임(尹行恁)의 『석재고(碩齋稿)』에서는 압운을 ‘연(蓮)으로 하여 시를 짓고 이어서 첨부된 해제에 ‘지난날 강희맹이 사신으로 난징에 갔다가 전당홍이란 연꽃 종자를 가져와 안산군에 심었는데, 이 꽃이 퍼져 고을의 이름을 연성이라 하였다[姜希孟奉使南京 取錢塘紅 種之本部 其後蓮子廣布 邑號蓮城]’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여러 책에도 안산의 별칭으로 연성이라 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