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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448
한자 古建築
영어음역 Gogoenchuk
영어의미역 Traditional Buildings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여성구

[정의]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옛 건축물.

[개설]

경기도 안산시의 고건축에는 주거건축, 종교건축, 근대건축물이 있다. 이 밖에 관아·객사·사직단·문묘·여단 등의 관아건축, 그리고 유교건축인 향교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등의 전란으로 모두 소실되었다. 주거건축으로는 청문당(淸聞堂)·경성당(竟成堂)이 있으며, 종교건축으로는 쌍계사 삼성각, 정려각 등이 전한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들이며, 최근 들어 보수와 중건을 거듭해 원형을 많이 잃었다. 근대 건축으로는 대부면사무소 청사를 들 수 있다.

[주거건축]

청문당·경성당을 들 수 있다. 진주유씨의 큰집이 청문당이라면 경성당은 작은집이다.

1. 청문당

부곡동에 있는 청문당은 안산에서 가장 오래 된 전통가옥으로 17세기 초에 진주유씨 16세손인 유시회(柳時會)가 지었다고 한다. 1만 권의 책이 있다 하여 만권당이라고도 불리며, 현재 진주유씨 종가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전면에 사랑채를 나란히 두고 오른쪽에 ‘一’자형 창고를 직각으로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튼‘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집의 남서쪽에는 14~15m 정도로 돌을 쌓아 만든 사각형의 연못이 있어 당시의 양반의 주거문화는 물론이고, 정원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2. 경성당

경성당은 19세기 중엽에 진주유씨 22세손인 유중서(柳重序)가 둘째아들이 살림을 날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안채와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로 되어 있는데, 안채는 10여 년 전에 서울의 한옥을 이건한 것이지만, 사랑채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사랑채는 방형의 돌로 6단의 석축을 쌓고 방형의 주춧돌 위에 방형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올렸다. 왼쪽에 누각형의 온돌방을 만들었고, 정면 4칸의 대청마루를 깔았다. 경성당청문당만큼 오래된 한옥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 또한 19세기의 안산 지역 양반 사회의 주거 양식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불교건축]

안산시의 유일한 전통사찰인 쌍계사는 17세기 중반에 창건되었으며, 이후 수차례 중수와 중건을 거치면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이 사찰의 삼성각은 기존의 극락보전을 새로 고쳐 지은 것으로 그나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삼성각은 주심포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초석은 원형이며, 고대에 사용하던 쇠시리까지 마련되었다. 원형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화반을 두어 주심도리의 처짐을 방지하고 있다. 내부에는 불단을 조성하고 가운데에 칠성탱화, 좌측에 산신탱화, 우측에 독성탱화를 봉안하였다.

[유교건축]

안산시의 유교건축물로는 오정각(五旌閣), 사세충렬문(四世忠烈門), 홍정희(洪貞羲) 효자문 등 3곳의 정려각과 고송정(古松亭)이 남아 있다.

1. 오정각

화정동에 있는 오정각은 1870년(고종 7)에 건립되었으며, 초익공(初翼工) 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건립되었다. 이 정려각은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했던 김문기(金文起)를 비롯하여 아들 김현석(金玄錫), 손자 김충주(金忠柱), 증손자 김경남(金景南), 현손 김약전(金約前) 등 5명의 충절과 효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2. 사세충렬문

와동에 소재한 사세충렬문은 조선 중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1971년에 중수하고, 1983년에 재차 보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인 목조건물로 4각 기둥의 주심포양식 팔작지붕이며, 주위에 1.6m의 담장이 둘려져 있다. 이 정려문은 임진왜란 때 순국한 김여물을 비롯하여 병자호란 때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그의 4대에 걸친 고부(姑婦) 등 애국 충정과 열녀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하사한 것이다.

3. 홍정희 효자문

대부남동에 있는 홍정희 효자문은 1893년(고종 30) 6월 건립되었으며, 맞배지붕에 전통기와를 올린 홑처마 건물인데, 벽은 최근 보수하면서 시멘트로 발랐다. 홍정희는 부친이 죽자, 묘소 앞에 여막(廬幕)을 지어놓고 3년 동안 묘소를 지켰다고 한다.

4. 고송정

화정동에 있는 고송정은 1827년(순조 27) 김여물의 후손인 김처일(金處一)이 지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건물은 1992년 전면 보수한 것이며, 원래의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굴도리집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이었다. 김여물의 손자 김충주는 조부와 부친의 죽음을 애통해하여 눈물을 흘렸는데, 그의 눈물에 소나무가 말라죽게 되었고, 후에 김처일이 그 자리에 정자를 세우고 고송정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4. 기타

이 밖에 명안공주 묘 주변에 제실이 있었으나, 199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마루 2칸을 포함하여 전면 4칸, 측면 2칸의 본채와 일자로 지은 3칸의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공주의 묘막이었던 만큼 대문간·본채는 화강석 장대석으로 단을 만들었고, 주초도 화강석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이 제실에는 공주와 관련된 간찰·서화·생활용품 등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이 중 45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 강릉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근대건축]

1933년에 지어진 부천군 대부면사무소 청사가 있다. 이 청사는 서양식의 건물이 아니라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겹처마에 전통기와를 올린 건물이다. 이후 옹진군 대부면사무소 등으로 쓰이다가 1982년 지금의 신청사가 마련된 후 대부역사유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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