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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819
한자 崔承萬
영어음역 Choe Seung Ma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진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교육자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7년연표보기
몰년 1984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제주도지사

[정의]

일제강점기에서 현대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교육자.

[개설]

최승만은 1897년(고종 34)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출생하여 1984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최승만은 장훈초등학교를 거쳐 1915년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동경관립 외국어학교 노어과(露語科)에 재학하던 중 유학생 최팔용(崔八鏞) 등과 독립운동을 추진하여 2·8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 유학생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동경 유학생 학우회의 기관지인 『학지광(學之光)』의 편집위원과 『창조(創造)』의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1922년에는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의의 기관지 『현대(現代)』의 주간(主幹)을 지냈다.

1930년 미국 스프링필드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동아(新東亞)』의 잡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을 계기로 퇴직하였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교화국장을 지내고 1948년 연희대학 교수, 1951년 제주도지사, 1952년 제주대학 초대 학장, 1954년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2년 대한소년단 부총재, 중앙여자고등학교의 이사와 감사를 지냈으며, 1966년 일본에서 한국기독교청년회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현재 독립기념관에 최승만의 비망록이 전하고 있다. 비망록에는 어렸을 때 정동예배당 유년 주일학교 생활과 함께 한일강제병합의 경과,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 중학교 때의 사상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밖에 YMCA 영어과에 편입하여 졸업한 일, 시골 생활을 하면서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동경외국어학교에 다니면서 2·8독립선언에 참가했던 일 등을 상세하게 남기고 있다. 동경 YMCA에서의 활동과 사업, 관동대지진 및 좌익계 인물에 관한 글, 김지섭·이봉창·양근환의 의거 등과 만주 생활과 8·15해방 등을 상세히 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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