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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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牙山洗心寺塑造如來坐像 |
영어공식명칭 | Clay Seated Buddha of Sesimsa Temple, As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윤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9월 11일 - 아산 세심사 소조여래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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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아산 세심사 소조여래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세심사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0] |
성격 | 불상 |
재질 | 목재 |
크기(높이) | 136㎝[높이]|87.7㎝[무릎 너비]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세심사 |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세심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세심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개설]
아산 세심사 소조여래좌상은 세심사 대웅전 안에 있는 조선 후기의 소조(塑造) 불상이다. 2016년 문화재 지정 예고를 거쳐 2017년 9월 11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아산 세심사 소조여래좌상은 세심사 대웅전에 주불(主佛)로 봉안된 여래좌상으로 전체 높이는 136㎝, 무릎 너비는 87.7㎝이다.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나 넓은 가슴과 반듯한 허리 등 신체의 비율은 안정적이다. 머리에는 정상계주(頂上髻珠) 없이 중앙계주(中央髻珠)만 표현되어 있으며,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계주란 상투 가운데 있는 밝은 구슬을 말하며, 정상계주는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위에 장식한 것이고, 중앙계주는 머리와 육계 사이에 장식한 것이다.
착의(着衣)는 양어깨를 덮고 길게 내려뜨려진 통견형(通肩形)의 대의(大衣)를 착용하였고 오른팔에 편삼(偏衫)을 걸치고 있다. 하체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형태이며, 오른발이 왼무릎 위로 노출되어 있다. 양손은 별도로 조각하여 끼우지 않고 양팔에 붙은 형태이다. 양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결(結)한 설법인(說法印) 계열의 수인(手印)[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이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의 설법인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설법인이란 중생에게 법을 설하고 있음을 알리는 수인으로 오른팔 혹은 양팔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든다.
아산 세심사 소조여래좌상에 봉안된 복장물(腹藏物) 등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없지만, 나발(螺髮)[부처의 머리털]이나 얼굴, 왼쪽 어깨 부분에 표현된 약한 맞주름의 표현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제작되었던 여래상에 표현되는 형식이다. 또한 오른발에서 흘러내려 발끝을 덮는 옷 주름의 표현 등을 종합해 보면 조선 후기인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아산 세심사 소조여래좌상은 감마레이 촬영 결과, 불상 표면의 많은 균열을 통해 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흙을 붙여 만든 목심(木心) 소조 기법을 통해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목심 소조 기법은 목재 수급에 대한 문제와 표면에 흙을 바름으로써 부패나 충해에 강한 성질을 가지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또한 나무와 흙을 고정하기 위한 조선시대의 꺾쇠 못이 다수 사용되었다.
[의의와 평가]
아산 세심사 소조여래좌상은 정확한 제작연대가 확인되지 않지만 17세기 불상 양식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재정의 어려움 속에 목심 소조 기법으로 제작되어 조선 후기 불교 조각 연구를 하는 데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