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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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洗心寺 |
영어공식명칭 | Sesimsa Temple |
이칭/별칭 | 신심사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용윤 |
건립 시기/일시 | 고려시대 추정 - 세심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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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563년 -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 판각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5년 - 영산회상도, 칠성도 봉안 |
개칭 시기/일시 | 1968년 - 신심사에서 세심사로 개칭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세심사다층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1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9월 20일 - 세심사 충청남도 전통사찰 제61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10월 30일 - 아산 세심사 신중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9월 11일 - 아산 세심사 소조여래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12월 26일 -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 보물 제1960호 지정 |
최초 건립지 | 신심사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1] |
현 소재지 | 세심사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산양리 221] |
성격 | 전통사찰 |
전화 | 041-543-2696 |
홈페이지 | 세심사(http://www.세심사.com/default/)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소속 사찰.
[개설]
세심사(洗心寺)는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에 있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세심사는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도 전하고, 645년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중창했다고도 전하나 직접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경내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1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제작된 세심사다층탑이 남아 있어 적어도 고려시대부터는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세심사와 관련된 기록은 조선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1530년(중종 25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범우고(梵宇攷)』등에 세심사가 확인되는데, 이 당시 사찰의 이름은 ‘신심사(神心寺)’였다.
경내에 남아 있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에도 세심사의 옛 이름인 ‘신심문실(神心文室)’을 확인할 수 있다. 『충청도관초(忠淸道關草)』의 1887년(고종 24년)의 기록에도 신심사를 개건(改建)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남아 있으며, 대웅전에 봉안된 후불도인 영산회상도는 1937년에 제작된 것인데, 이 불화의 화기에도 신심사에서 제작하였다는 내용이 남아 있어 근대까지도 신심사로 법등을 이어갔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세심사’라는 이름은 1968년 승려 일타(日陀)와 도견(道堅)이 사찰 입구의 ‘세심당(洗心堂)’이 새겨진 승탑(僧塔)에서 ‘세심사(洗心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전한다.
[활동 사항]
조선 인조(仁祖) 때 이민구(李敏求)가 사찰의 경관을 읊은 시가 『동주집(東州集)』에 남아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세심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산령당, 요사 및 범종각 등이 남아 있다. 대웅전 앞에는 세심사다층탑이 남아 있으며, 영산전 앞에 ‘세심당(洗心堂)’이라고 적힌 승탑 2기가 남아 있다.
[관련 문화재]
세심사는 법등이 오래도록 이어진 만큼, 경내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경내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31호인 세심사다층탑이 있으며, 대웅전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0호로 지정된 조선 후기의 아산 세심사 소조여래좌상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2호로 1794년에 제작된 아산 세심사 신중도, 1935년에 제작된 영산회상도 등이 남아 있다. 영산전에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석가여래삼존상과 나한좌상, 1935년 제작된 칠성도 등이 남아 있다. 또한 보물 제1960호인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목판이 남아 있는데, 세심사에서 판각된 경판으로 현존하는 『부모은중경』 언해본 목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