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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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城 |
영어공식명칭 | Kweikolsa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앵리산성,꾀꼴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송촌리|탕정면 용두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서정석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1월 18일~9월 14일 -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꾀꼴산성 지표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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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꾀꼴산성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송촌리|탕정면 용두리 |
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석축 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34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송촌리와 탕정면 용두리 경계에 있으며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석축 산성.
[개설]
꾀꼴산성[앵리산성(鶯里山城)]은 음봉면 송촌리 남쪽의 꾀꼴산[꾀꼬리산, 앵리산] 정상부에 자리한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340m에 이른다. 성벽의 대부분은 붕괴된 상태이다.
[건립 경위]
꾀꼴산성의 축성 연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성내에서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 조각과 자기 조각 등 유물이 발견되어 백제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치]
충청남도 아산시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난 국도 45호선 충무로를 타고 가다 음봉교차로에서 동쪽으로 지방도 628호선 음봉로를 따라 3㎞ 남짓 가면 음봉면 송촌리에 이른다. 남쪽의 마을 뒤에 있는 높이 271m의 꾀꼴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산성이 꾀꼴산성이다. 동남쪽의 탕정면 용두3리 산골마을을 통해서 올라갈 수도 있고, 음봉면 동천2리를 거쳐 서쪽의 물한산성에서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통칭 영인지맥의 남쪽에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이어진 능선에 있으며 북동쪽에 연암산 봉수대가 보이고, 서쪽 1.4㎞ 지점에 있는 물한산성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형태]
꾀꼴산성은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 능선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테뫼식으로 축조하였다. 테뫼식이란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이 되게 한 바퀴 둘러쌓은 산성을 말한다. 산성의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삼각형의 말각(末角)[각도를 죽여 둥글게 만듦]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쌓는 편축식(片築式)으로 축조하였다. 성벽의 대부분이 붕괴되어 정확한 축성법을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을 통해서 볼 때 성내의 지면까지는 편축식으로 축조하고, 그 위쪽은 성벽의 안과 바깥을 모두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잔존 상태가 양호한 구간에서는 3~4m가 남아 있으며,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5m 정도에 이른다.
성돌(城-)은 자연 할석(割石)[쪼갠 돌]을 그대로 이용한 구간도 있고, 얇고 길쭉하게 장방형(長方形)[직사각형]으로 가공하여 축조한 구간도 있다. 성문은 동문, 서문, 남문이 있었다. 치성(雉城)[성 위에 낮게 쌓은 담]도 동북쪽과 서남쪽에 하나씩 설치되었는데, 두 곳 모두 성벽이 능선을 가로지르는 구간이어서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취약한 곳이다.
[현황]
꾀꼴산성은 비교적 좁고 가파른 산봉우리 정상에 축조되었던 산성으로 성벽 대부분이 무너져 있는 상태이다. 동문지와 서문지, 그리고 남문지가 확인되며 능선 부분에서는 각각 치성이 1개소씩 축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성 내부는 협소한 편이지만 정상부에는 직경 10m, 깊이 2m 정도의 웅덩이가 남아 있다. 이것이 저수 시설인지는 발굴 조사를 거쳐야 알 수 있다. 아울러 산성 내에서는 삼국시대 토기 조각과 조선시대 자기 조각을 수습할 수 있다. 수십 년 전에는 인근 마을 주민들이 야유회처럼 꾀꼴산성으로 놀러오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꾀꼴산성이 이미 폐성이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에 축조된 오래된 산성임을 알 수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백제시대의 연변 관방(關防)으로 소개되어 있고, 성내에서 백제 토기 조각이 확인되는 점 등으로 보아 꾀꼴산성은 백제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5세기 중반의 웅진(熊津)[현재 공주시] 천도 이후 백제가 고구려, 신라와 항쟁하는 과정에서 아산 지역이 지녔던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