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11
한자 牙山講堂-龍湫石刻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승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앙산 강당골 용추 석각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 지도보기
성격 석각
관련 인물 이간|이주열|이욱렬|이용헌|이용빈|이용오|이용대|이백선|윤홍|윤태희|서영석|유기석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석각.

[개설]

충청남도 아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강당골계곡에서 매우 아름다운 장소가 용추(龍湫)이다. 강당골계곡 초입의 용추는 비스듬한 폭포 아래의 깊은 못이며 용이 승천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좌우가 수직에 가까운 암벽으로 이루어져 폭포 부분이 돌문과 같다고 보아 ‘석문용추(石門龍湫)’라고도 불렀다. 조선 후기 아산 출신의 성리학자 외암 이간(李柬)[1677~1727]이 그 상류 쪽에 외암정사를 지을 당시도 ‘용추’라고 하였다. 외암정사를 흔히 강당이라 불렀으며 계곡과 마을 이름도 강당에서 비롯되었다.

용추 주변에는 모두 한자로 새긴 다양한 석각이 있는데, 곳곳의 바위에 1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중심 암벽에는 4자의 3개 문구 12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용추 주변은 예안이씨의 소유여서 이름을 새긴 10명 중에서 예안이씨가 7명으로 이주열(李周烈), 이욱렬(李郁烈), 이용헌(李用憲), 이용빈(李用彬), 이용오(李用五), 이용대(李用大), 이백선(李伯善)이 있고 이간의 벗인 윤혼(尹焜)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윤홍(尹弘), 윤태희(尹泰熙), 그리고 서영석(徐榮錫), 유기석(柳基錫) 등이 새겨져 있다. 그 외 마모되거나 새기다 만 글씨도 일부 보인다. 인근 외암마을에 중심을 두고 있는 예안이씨 인물들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인물들이다.

[건립 경위]

아산 강당골 용추 석각 중 이름을 제외한 주요 석각은 외암 이간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새긴 것으로 보인다. 문구 하나를 쓴 인물로 예안이씨 이용헌[1863~?]이 기록되어 있다. 외암 이간의 7대손이고 학문이 있어서 음직으로 참봉을 지냈다고 한다. 글씨는 19세기 말경에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3구 12자 중 2구 8자는 누가 언제 새긴 것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위치]

아산 강당골 용추 석각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강당골계곡 초입부의 용추라는 깊은 못 주변에 있다. 송악면 소재지의 국도 39호선 외암삼거리에서 강당골 방향으로 강당로를 따라 2.3㎞ 남짓 가면 강당골 공영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맨 끝에서 상류 쪽으로 계곡을 따라 60여m 올라가면 용추가 있고 그 주변에서 석각을 볼 수 있다.

[형태]

아산 강당골 용추 석각 중 주요 석각인 3개 문구 12자는 강당골계곡의 상류 쪽을 보며 오른쪽 암벽에 새겨져 있다. 좌우로 갈라진 암벽 상단의 오른쪽에 ‘산고무이(山高武夷)’, 왼쪽 바위에 ‘동심화양(洞深華陽)’이 해서체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 중앙 하단에는 ‘한수추월(寒水秋月)’ 네 글자가 있고, 그 아래에 ‘이용헌(李用憲)’이라고 단정하게 잘 쓴 예서체로 새겨져 있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용추와 주변 계곡은 한동안 음식점이 영업했었고, 용추 주변에 석축과 철물 등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아산 강당골 용추 석각 중 문구 석각은 이끼와 돌이끼 등이 덮여 있으나 대체로 양호한 상태이다. 폭포 바로 위에는 소규모의 출렁다리[현수교] 두 개가 설치되어 그중 나중에 설치된 다리가 이용되고 있다. 예안이씨 문중 인물들의 이름은 대체로 붉게 채색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아산 강당골 용추 석각 ‘산고무이(山高武夷) 동심화양(洞深華陽)’은 광덕산강당골이 ‘산이 높아 무이[송나라 주희가 머물던 무이산]와 같고 골이 깊어 화양[성리학의 거두 우암 송시열이 머물던 충북 화양계곡]과 같다’는 의미이다. ‘한수추월(寒水秋月)’은 주자의 시에서 유래한 글귀로,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성인 공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니, 가을 달빛이 차가운 물을 비추는 것과 같구나."에서 비롯된 문구이다. ‘한수’는 이간의 스승이며 ‘한수재(寒水齋)’가 또다른 호인 수암 권상하(權尙夏)[1641~1721]를 말하며, ‘추월’은 권상하로부터 ‘추월헌(秋月軒)’을 호로 받은 제자 이간을 가리킨다.

전체적으로 주자의 성리학이 우리나라 송시열로 이어지고 그런 우리나라 성리학 주류의 적통을 스승 권상하에 이어 외암 이간이 계승하였음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후손들이 외암 이간에게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광덕산 강당골이 그 산실이었음을 나타내고자 한 석각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을 피해 외암서사강당사로 바꾼 이후 그래도 외암의 학문이 꽃핀 곳이라고 알리고 싶었던 후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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