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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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牙山李忠武公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로 12-38[삼거리 산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민규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45년 - 이순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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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98년 - 이순신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599년 2월 - 아산 이충무공묘 조성 |
이장 시기/일시 | 1614년 - 아산 이충무공묘 이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60년 - 김육의 이순신 신도비 건립 |
개축 시기/일시 | 1720년 - 아산 이충무공묘 묘갈 새로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94년 - 정조의 어제 이순신 신도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아산 이충무공묘 사적 제112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아산 이충무공묘 사적 재지정 |
현 소재지 | 아산 이충무공묘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로 12-38[삼거리 산2-1] |
원소재지 | 아산 이충무공묘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 |
성격 | 묘 |
관련 인물 | 이순신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9,600㎡[묘역 면적] |
관리자 |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묘.
[개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사후에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책록되고 덕풍부원군(德豐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좌의정으로 증직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정조 때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1599년에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의 금성산(錦城山)[현재 금산]에 안장되었다가 15년 뒤인 1614년에 선영인 현재의 위치로 이장되었다. 선영 입구에 김육(金堉)이 지은 신도비가 1660년에 건립되었으며, 1794년 건립한 정조(正祖)의 어제(御製) 이순신 신도비가 묘 아래 비각(碑閣) 안에 있다. 아산 이충무공묘는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아산 이충무공묘는 어라산(於羅山) 정상 남쪽 100여m 지점인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산2-1에 있다. 아산 이충무공묘 좌우에는 어라산 정상에서 좌우로 갈라진 능선이 길게 남남서쪽으로 뻗어 내리며, 좌우에서 묘역을 감싸고 있다. 그중 서쪽 능선이 선영이며 이순신의 부모와 형제, 후손들의 묘 수십 기가 조성되어 있다.
[변천]
충무공 이순신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 당시 경상남도 남해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여 이순신의 유해를 관음포의 이락사에 잠시 모셨다가 뱃길로 옮겨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묘당도]에 초빈을 차려 임시 안치하였다. 1598년 말에 육로를 이용하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의 이순신 옛집으로 옮긴 뒤에 초빈을 모셨다. 1599년 2월 11일, 순국 84일 만에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의 금성산 동남쪽 자락에 안장되었다. 이 묫자리는 명의 장수이자 풍수사였던 두사충(杜師忠)이 선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이 1604년에 선무공신에 책록되고 좌의정으로 추증된 뒤 장례가 제대로 예우를 갖춰 치뤄지지 못했다는 자손들의 이장 요청 상소에 따라 장례 15년 뒤, 이순신 사후 16년 뒤인 1614년(광해군 6)에 현재 위치인 어라산 남쪽으로 이장되었다. 현 위치의 묫자리는 당시의 명풍수 박상의(朴尙義)[1538~1621]가 정했다고 전해지는데,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아산 이충무공묘에는 이순신이 1793년(정조 17)에 영의정에 추증된 뒤 묘 앞에 장명등, 석양 등 석물이 설치되었다. 1794년(정조 18)에 정조가 직접 비문을 짓고 비를 세우도록 명한 어제 이순신 신도비가 묘의 동남쪽 아래에 건립되었다.
[형태]
아산 이충무공묘는 화강석 9매로 조성된 호석(護石)을 두른 봉분에 이순신과 부인 상주방씨(尙州方氏)와 합장되어 있다. 봉분 주위로 곡장(曲墻)이 둘려 있으며, 봉분 동쪽에 묘비[묘표]가 있다. 봉분 앞에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이 차례로 배설되어 있다. 무덤 앞에 편평하게 만들어 놓은 장대석인 계체석(階砌石) 아래로 동자석(童子石), 망주석(望柱石), 석양(石羊), 문인석(文人石) 각 한 쌍과 가운데에 장명등(長明燈)이 있다. 묘비는 1720년에 새로 건립되었다. 네모난 비석 받침[碑座], 비신(碑身), 지붕돌[蓋石]로 이루어져 있으며 받침과 지붕돌은 화강석, 비신은 오석으로 제작하였다. 뒷면의 음기(陰記)는 이이명(李頤命)[1658~1722]이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李鳳祥)의 청으로 지은 것이다. ‘숭정기원후삼병신이월 일 추각립(崇禎紀元後三丙申二月 日追刻立)’이라 한 것으로 보아 1776년(영조 52)에 추가로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석문]
1. 묘비 앞면 비문[해서체]
증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 경연사 덕풍부원군 행 정헌대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충청전라경상삼도수군통제사 시충무 이공순신지묘, 정경부인 상주방씨 부좌(贈效忠杖義迪毅協力宣武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 經筵事德豐府院君行正憲大夫全羅左道水軍節度使兼忠淸全羅慶尙三道水軍統制使 諡忠武 李公舜臣之墓, 貞敬夫人 尙州方氏 祔左)
2. 호석 명문[전서체]
남쪽에 ‘향 내병 외정(向內丙外丁)’이라는 봉분의 방향이 새겨져 있고, 봉분 좌향(坐向)을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유명 수군도독 조선국 증영의정 덕풍부원군 행삼도통제사 시 충무 덕수이공지묘 정경부인 상주방씨 부좌(有明水軍都督朝鮮國贈領議政德豐府院君行三道統制使諡忠武德水李公之墓貞敬夫人 尙州方氏 祔左)’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현황]
이순신의 초장지(初葬地)인 산정리 금산 유좌의 묫자리에는 이순신의 둘째 손자인 이지석(李之晳)[1612~1679]의 묘가 되었다. 현 위치의 아산 이충무공묘는 묘 남서쪽 약 700m 지점의 진입로 입구에 1660년(현종 1)에 건립된 이순신 신도비가 있고 진입로를 오르며 중간에 관리사무소와 약수터, 화장실 등이 있다. 계속 진입로를 오르면 이충무공의 묘역에 이르는데, 묘역 어귀에는 최근에 세운 신도비가 또 있다.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맞아 충무공 후손들이 1998년 11월에 세웠으며, 오석에 새긴 비문은 강영훈[전 국무총리]이 지었다. 묘역 좌우에는 묘로 오르는 돌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봉분 뒤쪽에 설치된 사고석 돌담에 기와를 얹은 곡장은 현충사 성역화사업과 관련하여 묘역도 정비하면서 1975년에 설치한 것이다. 이충무공의 묘역은 넓은 잔디밭과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품격 있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며,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아산 이충무공묘의 석물은 비석 외에는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제작 시기가 모두 다르다. 문인석, 동자석, 망주석은 17세기 작품이며, 석양, 향로석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사이의 작품이다. 장명등은 개수된 부분이 많아 제작 시기를 추정하기 힘들지만, 석양과 같은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석물은 대체로 인근 장인들이 제작한 듯 꾸밈이 없고 자연스럽다. 화려하지 않아서 다행히 이순신의 인품에 누가 되지 않는다.
아산 이충무공묘는 충청남도 아산의 대표적 역사 인물이자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역사적 인물 이순신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충, 의, 효의 삶을 살았던 이순신을 추모할 수 있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