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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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栢年 |
영어공식명칭 | Gang Baegnyeon |
이칭/별칭 | 숙구(叔久),설봉(雪峯),청월헌(聽月軒),한계(閑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경윤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정퇴서원에 제향되었던 문신.
[개설]
강백년(姜栢年)[1603~1681]은 1627년(인조 5) 정시(庭試)[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대궐 안에서 보이던 과거] 문과에 을과(乙科) 급제 후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다. 강백년은 1690년(숙종 16)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고, 일찍이 부친의 뇌물수수 사건을 겪은 후 젊어서부터 몸을 단정히 하고 재물을 탐하지 않는 청빈한 삶을 살았다. 강백년 사후인 1695년(숙종 21) 관직 수행 능력이 뛰어나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청렴·근검·도덕·경효·인의 등 덕목을 두루 겸비한 사람에게 주는 청백리에 피선(被選)되었다. 충청도관찰사를 지낼 적에 충청감영(忠淸監營)을 복원·이건하였다.
[가계]
강백년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청월헌(聽月軒)·한계(閑溪),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강인(姜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고, 아버지는 강주(姜籒), 어머니는 김응서(金應瑞)의 딸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활동 사항]
1627년(인조 5)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과 장령(掌令)을 지냈지만, 1646년(인조 24) 강빈옥사(姜嬪獄事)가 일어나자 부교리(副校理)로서 강빈의 억울함을 상소하다 삭직(削職)당하였다. 1647년(인조 25) 상소하여 전국에 걸쳐 향교를 부흥시켰고, 1648년(인조 26) 대사간(大司諫)으로 지내다 다시 강빈의 신원(伸寃)을 상소했지만, 청풍군수로 좌천되었다.
1653년(효종 4) 좌승지(左承旨)에 오르고 충청도와 강원도의 관찰사를 거쳤으며, 1660년(현종 1) 예조참판으로서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바가 있다. 1670년(현종 11) 도승지(都承旨)와 이조참판을 역임한 뒤 현종이 죽자 시책문(諡冊文)[제왕이나 후비(后妃)의 시호를 임금께 아뢸 때에, 그 생전의 덕행을 칭송하여 지은 글]을 지었고, 예조판서와 우참찬(右參贊)을 거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강백년은 청풍군수, 강릉부사, 충청감사, 황해감사, 경기감사 등 외직도 두루 역임하였다. 특히 청풍군수 때에는 어사(御史)가 강백년의 청백함과 백성의 사랑함을 효종에게 아뢰어 효종이 옷 한 벌을 상으로 내리었다. 충청감사 때에는 호서에서 대동법을 처음으로 시행하는 업무를 잘 처리하여 호서인의 칭송을 받았다.
1653년(효종 4) 강백년이 충청도관찰사로 공주에 왔을 때, 충청감영을 봉황산 아래의 옛터로 옮겼다. 이때 이전(移轉)에 앞서 충청감영을 대대적으로 복원하였다. 소요 경비는 충청감영에서 환곡(還穀)의 출납을 절약하여 기와와 벽돌은 재목과 함께 금강 상류에서 뗏목으로 나르는 등 청백하기로 이름을 높였다. 공사는 1653년(효종 4) 겨울에 시작하여 다음 해 봄에 완성하였다.
[학문과 저술]
강백년은 만년에 고금의 가언(嘉言)과 선정(善政)에 관한 것을 수집하여 『한계만록(閑溪謾錄)』을 지었다. 약간의 시문이 『설봉집(雪峯集)』에 실려 있다.
[묘소]
강백년의 묘는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에 있다. 강백년은 충청도관찰사를 지내면서 후손들에게 도신리의 지세가 맘에 들어 도신리에 장사 지낼 것을 유언하였고, 후손들은 강백년의 뜻에 따라 묘를 쓰게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동성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 뒷산에는 강백년의 묘소와 묘비, 신도비가 있다. 묘비는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임상원(任相元)이 지었으며, 신도비는 1705년(숙종 31)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임상원(任相元)이 짓고 조상우(趙相愚)가 썼으며, 전자(篆字)는 강백년의 첫째 아들 강선(姜銑)이 썼다.
[상훈과 추모]
1690년(숙종 16)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뒤에 청백리로 녹선(錄選)되었다.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던 정퇴서원(靜退書院),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의 용계서원(龍溪書院), 충청북도 청주시의 기암서원(機巖書院)에 배향되었다. 2002년 후손들에 의해 문정사(文貞祠)라는 사우(祠宇)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