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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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銑濬 |
영어공식명칭 | Lee Seonj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향산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천경석 |
출생 시기/일시 | 1911년 - 이선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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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5년 6월 17일 - 이선준 아산 적농사건으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음 |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109번지 |
거주|이주지 | 거주지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향산리 150번지 |
성격 | 대중운동가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대표 경력 | 남로당원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활동한 대중운동가.
[개설]
1930년대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적색농민조합운동(赤色農民組合運動)에 동참하는 등 사회주의적 경향의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가계]
이선준(李銑濬)[1911~?]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본적은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현재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109번지이다. 1935년 당시에는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향산리[현재 아산시 도고면 향산리] 150번지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각현(李覺鉉)으로 당진군의 유명한 한학자였고 한약상을 운영하였다. 이선준은 15세에 결혼하였으며 아내는 장순의(張順儀)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장후재(張厚載)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선준은 1933년 8월 7일 보안법 위반죄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기록이 있는데, 어떤 사건에 의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9개월로 형량이 감형되어 출감한 후 당진군 우강면으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아버지 일을 도왔다. 1935년 6월 17일 아산적농사건(牙山赤農事件)으로 인하여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적농은 적색농민조합을 말하며, 일제는 이선준이 같은 마을[도고면 향산리]에 거주하는 한명식(韓明植)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하고 지하활동을 준비하였으며, 한명식이 실제로 여러 사람에게 연락하게 하였다는 혐의를 적용하였다. 이선준이 판결에 불복하였으나, 1935년 9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1심 판결대로 징역 2년이 확정되어 복역하였다.
그 뒤 이선준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으며 광복 이후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였고, 남로당원으로 대구 10월 사건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부터 이선준의 활동은 아산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1950년 6·25전쟁 당시 아산군 온양읍에 있던 제일여관에 은신하였다가 소식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