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95
한자 趙鳴岩
영어공식명칭 Jo Myeongam
이칭/별칭 조영출(趙靈出),김다인(金茶人),김운탄(金雲灘),김호(金湖),남녀성(南麗星),부평초(浮萍草),산호암(珊瑚岩),양훈(楊薰),이가실(李嘉實),함경진(咸璟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형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3년 1월 10일연표보기 - 조명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조명암 북한에서 『조영출 시전집』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61년 - 조명암 북한에서 『조영출 희곡집』 출간
추모 시기/일시 1973년 - 조명암 북한에서 국기훈장 제1급 및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 수여
몰년 시기/일시 1993년 5월 8일연표보기 - 조명암 사망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지도보기
성격 시인
성별
본관 양주(楊州)
대표 경력 시인

[정의]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시인이자 대중가요 작사가.

[개설]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본적은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이다. 본명은 조영출(趙靈出)로,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서 태어나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필명으로 김다인(金茶人), 김운탄(金雲灘), 김호(金湖), 남녀성(南麗星), 부평초(浮萍草), 산호암(珊瑚岩), 양훈(楊薰), 이가실(李嘉實), 함경진(咸璟進) 등을 이용하였다.

[활동 사항]

조명암(趙鳴岩)[1913~1993]은 1913년 1월 10일 태어났다. 일찍부터 가세가 기울어 15세 무렵에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에 들어가서 중련(重連)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부설 봉명학교(鳳鳴學校)에서 공부하였다.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추천으로 1930년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고, 1935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제이고등학원(第二高等學院)에 들어가 1937년 졸업하였다. 1938년에는 와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1941년 졸업하였다.

1930년대부터 시와 대중가요 작사 등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광복 이전까지 약 70여 편의 시와 600여 편의 작사를 했다. 대표작으로 「바다의 교향시」, 「꿈꾸는 백마강」, 「선창」, 「신라의 달밤」, 「낙화유수」 등이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말기에 「지원병의 어머니」, 「아들의 혈서」 등 40여 편의 친일가요를 만들어 일제 식민통치를 뒷받침하였다.

광복 이후 좌익 경향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선문학가동맹, 조선연극동맹 등에서 활동하였고, 1948년 월북하였다. 1993년 5월 8일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조명암은 북한에서 1957년에 『조영출 시전집』, 1961년에 『조영출 희곡집』 등을 출간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명암은 1973년 북한에서 국기훈장 제1급 및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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