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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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臣李舜臣旌閭 |
영어공식명칭 | Chungsin Yi Sun-sin Jeongnyeo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여송은 |
건립 시기/일시 | 1604년 - 충신 이순신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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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충신 이순신 정려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산57-1 |
성격 | 정려 |
양식 | 익공식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아산 이충무공 유허 경내에 있는 충신 이순신의 조선 후기 정려.
[개설]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이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이끌고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왜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우의정(右議政)을 추증하였다. 이후 1604년(선조 37)에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으로 녹훈되었으며, 좌의정이 증직되었고 덕풍부원군(德豊府院君)으로 봉해졌다. 1643년(인조 21)에는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고, 1659년(효종 10)에는 남해의 전적지에 충무공 이순신의 비석이 세워졌다. 1707년(숙종 33)에는 충청도 아산(牙山)에 세워진 이순신의 사당에 ‘현충(顯忠)’이란 편액이 하사되었으며, 1793년(정조 17)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이순신에 대한 충신 정려는 이순신이 선무공신 1등이 된 1604년(선조 37) 10월에 선조의 명으로 내려졌다.
[위치]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사적 제155호 아산 이충무공 유허 경내에 있다. 입구를 거쳐 충무문을 지나면 70여m 앞 오른쪽에 충신 이순신 정려가 있다.
[변천]
충신 이순신 정려의 건립과 이후 중수 등의 변천 과정은 확인이 어렵다. 100년 후인 1704년에 내려진 이순신의 조카 이완(李莞)의 충신 정려를 비롯하여 5대손 이봉상(李鳳祥), 4대손 이홍무(李弘茂)의 충신 정려와 8대손 이제빈(李悌彬)의 효자 정려가 차례로 내려졌는데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정려각의 변화도 알 수 없다. 다만, 1960년대 후반부터 현충사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그때 남향이었던 정려가 진입로에 맞춰 서향으로 돌려 세워졌다고 전해지며, 그 정확한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형태]
충신 이순신 정려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익공식 맞배지붕 건물로, 처마는 겹처마이고 기와는 청기와를 얹었다. 화강석 기단 위에 팔각 장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올렸으며, 벽면은 사방 모두 홍살로 꾸며졌다. 좌우 측면에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아산 이충무공 유허에 있는 정려에는 충신 이순신 정려가 후손들의 정려 4기와 함께 설치되어 있다. 그중에서 바라보며 맨 왼쪽 칸에 충신 이순신 정려의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바탕은 검은색, 글씨는 흰색이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충신 유명 수군도독 조선국 증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겸 령 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 사 덕풍부원군 행 정헌대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충청 전라 경상 삼도통제사 시 충무공 이순신지려 - 선묘 갑진 시월 일 명정(忠臣有明 水軍都督 朝鮮國 贈效忠仗義迪毅協力宣武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德豊府院君行正憲大夫全羅左道水軍節度使兼忠淸 全羅 慶尙三道統制使諡忠武公李舜臣之閭-宣廟甲辰十月日命旌)’
그런데 이순신에게 충신 정려가 내려질 당시[1604]에는 좌의정에 증직되었고 영의정에 증직된 것은 1793년이며, 시호가 내려진 것은 1643년이니 처음 내려진 명정의 내용과 다르다. 후대 언젠가, 특히 현충사 성역화 사업 진행 당시에 내용을 고쳐 쓰면서 생긴 오류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충신 이순신 정려는 충무공 이순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이며, 더불어 조카와 4대손, 5대손, 8대손의 정려가 나란히 있어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후손들의 충효 정신을 잘 보여 주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