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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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巍巖遺稿 |
이칭/별칭 | 외암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승은 |
간행 시기/일시 | 1760년 - 이간의 아들 이이병이 『외암유고』을 목판본으로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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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
소장처 | 고려대학교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안암동5가 1-2]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이간(李柬) |
권책 | 16권 8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14.5㎝[가로]|21.8㎝[세로]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외암리에 세거했던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간의 문집.
[저자]
이간(李柬)[1677~1727]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자는 공거(公擧), 호는 외암(巍巖)·추월헌(秋月軒),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학행(學行)으로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권상하(權尙夏) 문하의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같은 문인인 한원진(韓元震)과 벌인 이른바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낙론(洛論)인 인물성구동론(人物性俱同論)과 미발심체본선론(未發心體本善論)을 주장하였다. 1802년(순조 2) 이조판서가 증직되고 온양의 외암서원(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외암유고(巍巖遺稿)』는 저자인 이간의 사후 33년인 1760년 아들 이이병(李頤炳)이 경산(慶山)현령으로 재직하던 중 아버지의 원고를 수습 및 정리하여 목판 8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출간 이후 권상하의 문인 윤봉구(尹鳳九)가 문집 내용 중 「여송무관(與宋務觀)」, 「사설(師說)」, 「회곡행장(晦谷行狀)」 등에서 스승 권상하의 실수를 드러내거나 권상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며 수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보각된 판본에서 이이병은 윤봉구의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그가 삭제를 요구한 부분을 그대로 두거나 「답윤서응기해(答尹瑞膺己亥)」와 같은 글을 오히려 보충하는 방식으로 이간의 주장을 강화하려 하였다.
[형태/서지]
『외암유고』는 16권 8책의 목판본으로, 매면 10행 20자, 크기는 가로 14.5㎝, 세로 21.8㎝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외암유고』는 권두에 작품 전체의 목록이 있으며,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나 간행 연대는 알 수 없다. 권 1~2는 시로, 1706년부터 1727년 사이에 지은 170여 수가 연도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외암오산(巍巖五山)」, 「외암오수(巍巖五水)」 등 주로 저자가 거처하던 외암 근처의 산수를 읊은 작품이 많다. 「한산기행(寒山紀行)」은 1709년 한원진(韓元震), 윤혼(尹焜) 등과 학문에 대한 토론을 하고 돌아와 지은 시이며, 「계음절구(繼吟絶句)」도 문인들과의 만남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권 3은 상소(上疏)와 연설(筵說)이다. 1715년과 1717년 자의(諮議)로 제수되었을 때 사직한 상소와 1726년 경연관의 직임을 사양한 상소,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를 변호하는 내용의 상소, 1726년 올리려고 작성하였다가 올리지 못한 「의상소(擬上疏)」가 있다. 연설은 1726년 2월에 영조(英祖)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권 4~11은 편지이다. 총 45명에게 보낸 150여 편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스승 권상하에게 보낸 편지가 가장 많다. 그중 권 4의 「신묘서(辛卯書)」[1711년]와 「임진서(壬辰書)」[1712년]는 당시 한창 논쟁 중이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과 미발유선악지론(未發有善惡之論)에 관한 내용이다. 당시 이간과 한원진의 논쟁이 너무 과열되자 권상하가 이를 중재하였는데, 한원진의 주장에 동조했던 권상하에게 질문하고 반박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권 12~13은 잡저(雜著)이다. 이기(理氣)에 대한 저자의 논점을 정리한 글로,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 「미발유선악변(未發有善惡辨)」, 「미발변(未發辨)」, 「오상변(五常辨)」, 「미발변후설(未發辨後說)」 등이 있다. 「사설(師說)」은 하편에서 스승에 대한 도리가 강조되다 보니 학문이 지나치게 교조주의에 빠져 질문과 토론이 사라진 풍조를 비판하고 있는데, 문집 간행 후 이 내용이 스승 권상하에 대한 불만으로 이해되면서 문제시되었다.
권 14는 서(序)와 기(記)이다. 이 중 「외암기(巍巖記)」는 저자가 거주했던 온양 외암리의 지세와 풍경에 관한 것이다. 권 15는 제문(祭文), 권 16은 행장(行狀)과 묘갈(墓碣)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학자 중 하나인 이간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다른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외암유고』는 이간의 삶과 사상, 문학의 자취를 전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외암유고』의 초간과 보각본에 얽힌 문제는 호학파 내부의 학문적 분화와 진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