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370 |
---|---|
한자 | 苧産八邑商務社 |
이칭/별칭 | 저산팔구상무사,저포팔읍상무사,저산8읍상무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유병덕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지역에서 활동한 보부상 조직.
[개설]
저산팔읍상무사(苧産八邑商務社)는 조선 시대 모시의 주산지인 남포·부여·홍산·임천·한산·비인·서천·정산 등 8개 군·현의 보부상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보부상 조직으로, 보상(褓商) 조직인 저산팔읍상무우사(苧産八邑商務右社)와 부상(負商) 조직인 저산팔읍상무좌사(苧産八邑商務左社)로 구분된다. 저산팔읍상무사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 일대의 오일장을 무대로 장시의 관리와 모시세 등 세금 징수, 상품의 거래와 유통 등의 역할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설립 목적]
충청남도 보령시의 저산팔읍상무사는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상인들이 증가하면서 보부상들 내부의 결속과 상부상조 그리고 상품 거래와 유통에서 자신들의 권한을 공인 받고, 물건의 매매나 흥정 시에 횡포를 부리거나 술주정, 도박 등 장시에서의 풍기 문란 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충청남도 보령시의 저산팔읍상무사는 전국의 보부상 조직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직을 결성하였다. 저산팔읍상무사는 우사와 좌사의 구분되는데, 두 단체는 창설 시기도 다르며 별도의 단체로 활동해 왔다. 저산팔읍상무우사는 부여현감(扶餘縣監), 한산군수(韓山郡守) 등이 1845년 우사 임원을 임명하면서 발급한 차첩(差帖), 저산팔읍상무좌사는 비인수령(庇仁守令)이 1879년에 단체의 규약과 임원 선출 등의 내용을 담아 좌사에 내려 준 절목(節目) 등을 통해 조직의 결성 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저산팔읍상무우사의 결성 시점은 1851년에 결성한 예덕상무사와 원홍주등6군상무사에 비해 6년 정도 빠르다. 저산팔읍상무사의 활동 범위는 보령의 남포를 포함하여 부여·홍산·임천·한산·비인·서천 등지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우사는 1845년 설립 시점에는 남포·부여·홍산·한산·비인·서천 등 6개 군·현으로 시작하여 1872년 임천, 1892년 정산이 추가되었고, 좌사는 비인에서 창설하여 점차 8개 군·현으로 권역을 넓혀 왔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저산팔읍상무사는 기본적으로는 8개 군·현의 관할 장시를 관리·감독하고, 상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였으며, 국가의 필요에 따라 도적을 소탕하거나 동학농민군의 진압 등에 동원되어 준경찰, 군사 조직으로 활동하였다. 부상 조직인 저산팔읍상무좌사는 생선, 소금, 수철, 토기, 목물 등의 물품을, 보상 조직인 저산팔읍상무우사는 모시풀, 종이, 담배, 누룩 등의 물품을 취급하였다. 다만, 저산팔읍상무사에는 우사와 좌사 간에 소관하는 물품을 두고 분쟁을 다룬 문서가 전하고 있어, 우사와 좌사 간에 취급하는 물품을 두고 서로 경쟁하고, 갈등을 벌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시기에 따라 변화는 있지만 보령 지역에서는 남포현의 읍치를 비롯하여 읍월, 삼계, 간치 등에 저산팔읍상무사의 처소를 두고 운영하였다.
[현황]
저산팔읍상무사는 20세기 초반까지는 권역 내의 오일장을 무대로 상품의 거래와 유통, 장시의 발전 등을 위한 상인 단체의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이후로는 저산팔읍상무사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친목 단체로 유지되다가 1980년대 초반 좌사와 우사 모두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저산팔읍상무사는 조선 시대에 결성되어 20세기 이후까지 활동한 보부상 단체로, 좌사와 우사 모두 보부상 조직의 역사와 변천, 활동 사항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또한, 많은 문헌과 유품, 유적을 남기고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매우 높은 가치가 있다. 저산팔읍상무좌사와 저산팔읍상무우사의 주요 자료와 유품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