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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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亭 李之菡 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현서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 「토정 이지함 전설」 『대천시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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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이지함선생묘 -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토정로 1048[고정리 산27-3] |
관련 지명 | 갈머리 -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 |
관련 지명 | 오서산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산52-3 |
성격 | 인물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이지함|참외 장수|농부|이지함의 누이 |
모티프 유형 | 예언|재난|기인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에서 전해지는 토정 이지함과 관련한 이야기.
[개설]
「토정 이지함 전설」은 충청남도 보령에서 출생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과 관련한 이야기들로, 토정 이지함의 기이한 행적과 묘, 그리고 『토정비결(土亭祕訣)』을 지은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토정 이지함 전설」은 1994년 대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대천시지』에 5편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이토정 선생이 성주 8모란 자리[8군데의 모란형 명당자리]를 찾으려고 매일 성주산에 돌아다녔는데, 어느 날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성주산 8모란은 너의 것이 아니니, 오서산에 가서 잡아라.”하여 토정 선생은 오서산으로 향하였다. 오서산으로 가는 중 참외 장수를 만난 토정 선생은 참외 장수와 내기하여 참외값을 내지 않고 참외를 모조리 먹어버렸다. 이에 굶주리고 있는 처자식을 걱정하는 참외 장수에게 토정 선생이 미안한 마음에 소원을 묻자, 참외 장수는 묫자리를 잡아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래서 토정 선생은 오서산 밑에 있는 복호혈(伏虎穴)을 잡아 주었고, 그 후 참외 장수의 집안은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발전하였다. 그 묘는 한양 조씨의 중시조가 묻혀 있다고 한다.
2. 토정 선생이 묫자리 잡아 준 이야기
토정 선생이 꿈을 꾼 후 오서산에 와서 명당자리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명당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주포면 마강리 구슬 근처로 내려오자 산줄기가 끝나버렸다. 혹시나 오서산에서 뻗은 산줄기 끝에 명당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논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한 농부가 논을 갈고 있었는데, 농부는 “이 미련한 소야! 토정보다 더 미련한 소야!”라며 소를 고삐로 후려치고 있었다. 이에 토정 선생은 비꼬는 말투로 농담하기 시작하였다. “어이 농부! 그 거먹소[검정소]로 논을 갈기 어둡지 않은가?” 그러자 농부는 “그래서 쟁기 바닥에 ‘볏’을 달지 않았는가?” 하며 토정 선생의 말을 받아쳤다. 다시 토정 선생은 “어떻게 뜨거워서 논을 가는가?”라고 하자, 농부는 “그러니까 그걸 식히려고 성에[쟁기의 윗머리에서 앞으로 길게 뻗은 나무]가 있지 않은가.”라며 토정 선생의 말을 받아쳤다. 토정 선생은 농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보니 농부와 소가 온데간데없었다. 그래서 다시 산맥이 끊긴 곳을 가서 보니 훌륭한 명당이 있었다. 그 자리가 현재 주교면 고정리 토정 이지함의 묘소이다.
3. 토정 선생이 축지법을 쓴 이야기
토정 선생이 갈머리에서 머슴을 두고 살 때의 일이다. 당시 토정 선생의 조카 이산해(李山海)[1539~1609]가 영의정이었는데, 중국에서 칙사가 와서 죽순 나물을 가져오라고 할 것을 예측하였다. 토정 선생은 중국의 강남(江南) 지방에는 가을에도 죽순을 구할 수 있어 조카[이산해는 아님]를 데리고 축지법을 써서 죽순을 한 아름 가져왔다. 며칠 후 토정 선생의 예측대로 칙사는 임금을 찾아와 죽순을 요구하자 토정 선생은 죽순을 가져다가 대령하였다. 칙사는 조선에도 이런 능력 있는 신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얌전히 돌아갔다고 한다.
4. 토정 선생이 철마(鐵馬)를 예언한 이야기
토정 선생이 대천 갈머리에 살면서 후손들에게 이르기를, “이곳 갈머리 마을은 백마가 물을 먹는 형국인 갈마음수형(渴馬飮水型)이므로, 만약 마을 앞으로 철마가 지나가면 마을의 기운이 쇠하여 지탱할 수 없으니 모두 떠나거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5. 『토정비결』을 지은 이야기
『토정비결』은 토정 선생이 가난한 누이를 위하여 지은 것이다. 너무 가난하게 사는 누이가 안쓰러워 사람들의 신수나 보아 주면서 먹고살라고 지은 것이다. 그 후 이지함의 누이는 신수를 잘 보아서 잘살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토정 이지함 전설」은 이지함에 관한 인물 전설이다. 인물 전설은 특정 인물이 예사 사람과 다른 기이한 행적이나 능력을 전승하는데, 보령에서는 토정 이지함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묘 터와 관련하여 전승되기도 하고, 지명의 유래와 관련되어 전승되기도 한다. 특히, 특정 지역의 인물일 경우는 그가 활동한 연고지에서 지역적 증거물과 결부되어 활발한 전승을 보이는데, 보령에서의 토정 이지함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토정 선생이 한양 조씨 묫자리 잡아준 이야기는 토정 이지함이 잡아준 묘 터 덕분에 가문이 번성할 수 있었다는 당위성을 확보하면서 한양 조씨 가문의 위상[한양 조씨의 집성촌은 보령시 오천면 오포리에 있다.]을 높이고 있다. 또한,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에 있으며, 1992년 8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지함선생묘(李之函先生墓)의 터와 관련된 이야기라든가, 관촌(冠村)이라 불리는 갈머리에는 철마(鐵馬)[기차]가 나타나거든 후손들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하였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토정 이지함은 이렇듯 앞일을 예견할 수 있고, 축지법을 할 수 있는 기인(奇人)으로 형상화되면서 지역적 증거물과 결부되어 지역 인물의 전설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토정비결』의 지은이가 토정 이지함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보령시에서는 가난한 누이를 위하여 토정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어 이 또한 다른 지역과 차이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