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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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영어공식명칭 | Folklor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일대에서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신앙, 의식주, 놀이, 생업, 평생의례 등의 생활양식.
[개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한 문화를 생산한다. 보령시는 차령산맥의 남서 끝부분에 있는 시로, 동북부와 남동부에 산악이 발달되어 있고, 서부는 해안지대로 대체로 평지를 이루고 있다. 산악과 평지 사이에 산록완사면(山麓緩斜面)이 발달한 점이지대(漸移地帶)가 있다.해안선은 굴곡이 심하여, 넓은 간석지가 발달해 일찍이 간척이 되기도 하였다. 바다에는 13개의 유인도와 수십 개의 무인도가 펼쳐져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에 살던 보령시 주민이 만들어낸 민속에는 도서, 해안, 농경지, 산지 등 복합적인 조건이 문화 현상으로 표출되어 있다.
[보령시의 문화 현상]
보령시의 가장 두드러진 문화 현상은 어로와 관련한 생업과 신앙이 잘 발달되었다는 점이다.
첫째, 선사인들로부터 시작된 어로 활동은 최근까지 어업 전진기지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도서에는 해녀배 사업, 갯바위 조업, 안강망을 중심으로 한 어선 어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어업 인구가 줄곧 늘고 있고, 인근에서 가장 번화한 항구인 대천항과 조선 시대 충청수영의 배후 포구인 오천항 등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되고는 있지만 새롭게 변신하며 유지해 오고 있다.
둘째, 어업이 발달해 이와 관련한 민속신앙, 놀이 등이 발달되어 있다. 마을신앙 중 도서와 일부 해안에서 전승 중인 당제는 내륙과 산악지역의 마을신앙인 당산제, 산신제와 그 형태가 다르다. 당제의 신령은 당신(堂神), 서낭신 등으로 명명하기도 하고, 특정 역사적 인물을 모시기도 한다. 당신은 홀로 모셔지기보다는 여러 당신들과 함께 모셔진다. 산악지역에는 산신을 위하고, 평지에서는 산신과 하당신으로 정자나무·장승 등을 함께 위하지만 여러 당신을 모시지는 않는다. 당제에 모시는 당신은 바다와 관련한 신령의 성격이 강하다.
셋째, 섬과 내륙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섬 주민들은 과거에는 광천장을 이용하였지만 간척을 통해 수로가 막히면서 바다에 연한 대천항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여객선이 섬과 연결된 후로는 섬 주민이 닿는 유일한 공간이 되었다. 섬마다 운영하던 장배[뱃사공이 노를 저어 운행하는 작은 배] 전통도 자연스레 사라졌고, 당제를 지낼 때만 장배를 띄운다.
넷째, 도서지역의 당제 전통은 외연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단되었다. 도서지역의 당제는 어민들의 강한 종교적 열망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동력선으로 안전을 보장받게 되고 세월의 변화 속에서 당제에 관한 믿음이 약화되었다. 내륙과 달리 1년에 세 차례 당제를 지냈고, 유독 엄한 생활 금기를 지켜야 하는 등의 강력한 당제 관련 전통이 오히려 당제를 빠르게 중단하게 하는 변화를 이끌었다. 일찍이 기독교 신앙이 유입되었고, 지역의 유력자들이 기독교인이 되면서 당제는 1970년대를 즈음해서 빠르게 중단되었다.
다섯째, 보령시의 대표 민속놀이인 장고도 등바루놀이와 등불써기놀이 등이 있다. 두 놀이 모두 도서지역의 놀이로 농업보다는 어업과 관련된 놀이문화이다. 등바루놀이는 굴 채취 막바지에 많은 양의 굴을 채취하기 위해 15세 이상의 처녀들이 놀던 어물 채취 경쟁을 겸한 놀이이다. 여자의 성년식으로 알려져 있다. 등바루는 집중적으로 굴을 채취하는 관행을 지칭하는 용어로, 앞으로 다양한 사례 연구가 필요하다. 등불써기놀이는 섣달 그믐에 소년들이 등을 들고 동산에 올라 조기가 모여드는 흉내를 내는 놀이이다. 두 놀이 모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한 후 유명세를 얻은 놀이로, 장고도에서만 확인되는 특징이다.
[보령시의 민속 문화]
마을신앙은 도서와 해안의 당제, 해안과 평야의 당산제, 산악지역의 산신제 등 자연지리적인 요건이 신앙에 적용되어 있다. 마을 제사를 지낼 때 마을기[마을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깃발]를 세우는 전통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마을기만을 세울 뿐 농기와 관련한 기세배(旗歲拜) 등의 의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풍년이 들기를 희구하는 마음에서 다양한 의례를 베푼다.
보령시의 각 가정에는 집 안을 수호하고 가족의 안녕을 돌보는 가신(家神)이 있다고 여겼다. 집 안 곳곳에 신령이 각자의 맡은 소임을 다하며 그 가정을 돌본다. 성주는 집 안의 주인으로 대주를 돌보는 신령이며, 삼신은 아이를 점지하고 양육하는 신령이다. 부엌에는 집 안의 여자 어른으로 간주되는 조왕을 모시며, 장독대의 터주는 집을 지키는 신령이자 집의 임자이며 집을 돌보는 신령이다. 이들 신령이 집 안에 임재하면 집 안 식구들은 안정을 보장받지만, 이들 신령이 탈을 부리거나 집을 떠나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집 안의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 해마다 가신에게 정기적이고 일상적으로 의례를 베푼다. 1960년대 이후 중단되었다.
보령시는 산간과 해안 사이로 산록안사면과 평지의 점이지대가 있고, 해안가로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있다. 복잡한 간척지는 일찍이 간척해 농경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농경지에는 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보령시의 세시풍속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농사를 짓는 관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밭작물 재배지역에서 중시하는 단오보다 논농사와 밀접한 칠석과 백중을 더 중시한다. 정월대보름에는 풍농을 기원하는 의례가 발달되어 있다. 원산도에도 풍농의례인 볏가릿대 세우기를 행하였다. 볏가릿대 세우기 문화권역의 최서단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