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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270
한자 宜寧南氏
영어의미역 Uiryeong Na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원종동
집필자 김원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원종동
입향시기/연도 1600년대
성씨시조 남민
입향시조 남징|남연

[정의]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징·남연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의령남씨의 시조 남민(南敏)은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본래의 이름은 김충(金忠)이다. 755년(경덕왕 14) 사신으로 일본을 다녀오는 중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 신라 유린지[현재 영덕군 축산면]에 이르렀고, 이후 신라에 귀화하였다. 경덕왕이 중국 여남(汝南)에서 왔다하여 남씨(南氏) 성을 하사하여 이름을 남민(南敏)으로 바꾸었다. 영의공에 봉해졌고 영양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다.

본관을 의령으로 삼은 이유는 고려 충렬왕 때에 남민의 후손인 남홍보(南洪甫)·남군보(南君甫)·남광보(南匡甫) 형제가 공을 세워 남홍보는 영양, 남군보는 의령, 남광보는 칠성[현 고성]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이때부터 의령남씨는 남군보를 중시조로 하고 의령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의령남씨의 시조 남민의 첫째 아들 김석중(金錫中)은 남민이 성씨를 하사 받기 전에 출생 하였으므로 본래의 성씨를 따라 영양김씨가 되었다. 그래서 영양김씨와 의령남씨는 성씨는 다르나 시조는 남민[김충]으로 동계혈족이다.

[입향경위]

15세손 남징(南澄)[1645~1685]·남연(南淵)[1650~1728] 형제가 부천으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형 남징은 자가 청지(淸之)·여심(汝深)으로, 할아버지는 부평부사를 지낸 충장공 남이흥(南以興)이고, 아버지는 남두추이다. 동생 남연은 자가 여원(汝源), 호는 탄유(炭臾)로 『충장공유사(忠壯公遺事)』2권을 편찬하였고, 사후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남징·남연 형제 모두 문장이 뛰어나 계양팔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남징의 장남인 남휘(南徽)[1671~1732]는 자가 덕도, 호는 사비(四非)이다.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급제하여 금부도사를 지냈고, 계양삼호걸 중 한 명이다. 남연의 아들 남계는 사후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현황]

현재 의령남씨는 여월동과 원종동을 중심으로 부천시 전역에 걸쳐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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