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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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Single-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태,성주현 |
[정의]
경기도 부천시에 세거하는 동성동본의 집성촌.
[개설]
집성촌(集姓村)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조선 전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부천은 조선시대까지 부평에 속하는 지역으로 15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세거 집안이 입향하기 시작하고 집성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형성 시기]
17세기 이후 집성촌 형성이 일반화되는 객관적 배경으로는 상속 제도의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 예학(禮學)의 발달, 종법적 가족제도의 수용 등을 들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 아들·딸 또는 친손·외손의 구별이 엄격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남녀 구분 없이 균등하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또한 남자가 장가를 가서 처가살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따라서 사위가 처가의 터전을 이어받는 경우와 외손봉사(外孫奉祀) 또한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종법적 가족 질서로의 변화와 함께 상속 제도 또한 점차 적장자 중심의 차등 상속으로 변화하였다. 결국 가부장적인 친족 체제로의 변화, 상속 제도의 변동, 문중 의식의 대두 등이 17세기 이후 집성촌 형성을 가속화한 주된 원인이 되었다.
부천의 경우 촌락 형성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집성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고강동에 밀양변씨가 세거하면서부터이다. 15세기에 밀양변씨, 청주한씨, 여흥민씨가 부천 지역에 입향하면서 집성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6세기에는 죽산박씨가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17세기부터는 집중적으로 집성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전주이씨, 덕수장씨, 김해김씨, 광산김씨, 이천서씨, 의령남씨, 밀양박씨, 여주이씨, 해주정씨, 안동권씨, 안동장씨 등이 입향한 후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18세기에 들어서는 평산신씨, 문화유씨, 파평윤씨, 반남박씨, 양주조씨, 안동김씨, 밀양손씨, 원주원씨, 청송심씨 등이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신분 제도가 동요하기 시작한 19세기에는 수성최씨, 남원양씨, 연안차씨, 성산여씨, 은진송씨, 희천김씨, 덕수이씨, 나주나씨, 진주강씨, 수원백씨 등이 입향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지역 분포]
집성촌이 형성된 지역을 살펴보면, 조선 전기 현재의 고강동 일대에 밀양변씨가 입향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집성촌은 부천 지역의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기 이전까지 주요 집성촌이 20여 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공장공(恭莊公) 변종인(卞宗仁)의 후손인 밀양변씨가 고강동 일대, 청평군 한언(韓堰)의 후손인 청주한씨가 계수동·춘의동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형성하여 일찍이 기반을 마련하였다.
다음으로 성종(成宗)의 부마(駙馬) 민자방(閔子芳)의 후손인 여흥민씨가 작동에 자리를 잡았고, 죽산박씨가 역곡동·송내동·범박동에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도 고택이 남아 있다. 밀양박씨는 역곡동 안동네에 정착하였고, 원주원씨, 수성최씨, 의령남씨, 문화유씨, 전주이씨 화의군파는 여월동에, 평산신씨와 청송심씨가 송내동에 정착하였다. 전주이씨 효령대군파와 광산김씨 및 성산여씨는 내동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또한 전주이씨 임영대군파와 김해김씨가 약대동에, 밀양박씨가 삼정동에 자리를 잡았다. 밀양손씨, 의령남씨, 평산신씨, 안동김씨는 원종동, 덕수장씨는 중동, 양주조씨는 심곡동, 은진송씨는 도당동, 남원양씨, 안동권씨, 파평윤씨, 전주이씨 밀성군파는 괴안동, 연안차씨는 중동·원미동에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희천김씨, 나주나씨, 진주강씨, 수원백씨, 전주이씨 효령대군파는 상동에, 해주정씨는 작동에, 반남박씨는 대장동에, 이천서씨와 여주이씨는 중동·송내동에, 전주이씨 덕흥대원군파와 창녕조씨는 원미동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현황]
1973년 시 승격 이후 부천은 세거성씨와 집성촌이 많은 지역에서 벗어나 타 지역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부천 지역의 토박이보다 이주민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부천의 과거 모습과 농촌 사회의 혈연 중심의 마을 공동체에 대한 기억은 소수의 집성촌과 고택 등으로 남아 보존되고 있다.
2022년 현재 부천시의 대부분 지역은 산업화와 도시 개발로 인한 급격한 인구 이동으로 인해 기존 집성촌의 형태를 알 수 있는 곳이 극히 드물게 되었다. 도시계획으로 인하여 이전까지 세거해 오던 사람들은 상당 부분 토지를 처분하고 타 지역의 신도시나 그 외의 지역으로 이주한 상태이다. 그러나 여전히 밀양변씨, 죽산박씨, 청주한씨,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안동권씨 등은 부천시에 세거하는 성씨로서 과거 집성촌 형성의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