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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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漕倉 |
영어의미역 | Jochang Warehouse |
이칭/별칭 | 조운창(漕運倉),마산창(馬山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세곡 보관 창고.
[개설]
조선 건국 이후 전국에 있는 해운 교통의 요지에는 세곡을 서울로 수송하기 위한 조창(漕倉)이 설치되었다. 조창은 조운창(漕運倉)의 줄인 말로, 조선시대 지방의 각 고을에서 국가에 바쳐야 할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稅穀)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한 세금 보관 창고이다. 조선시대 전국에는 열 개의 조창이 있었다.
[제정경위 및 목적]
창원에도 조창이 설치되어 주변 고을들의 세곡 수납을 담당하였다. 창원에 설치된 조창에 세금을 들이는 고을은 창원을 포함하여 김해·웅천·칠원·함안·의령·진해·고성·거제 등 모두 아홉 개 고을이었다. 조창은 창원도호부에서 서쪽으로 8㎞ 거리인 마산포(馬山浦)에 위치하고 있었다. 인근에는 해창(海倉)이 있었다. 마산포에 있었기 때문에 마산창(馬山倉)이라고도 하였다.
[내용]
창원의 조창에 속해 있던 조선(漕船)은 창원 3척, 칠원 1척, 진해 1척, 의령 4척, 함안 4척, 웅천 1척, 거제 2척, 고성 1척, 김해 3척, 여분의 선박 2척 등 모두 22척이었다. 그 후 김해의 3척이 밀양의 삼랑창(三浪倉)에 이속되어 19척만 남았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마산창에 수합해 두었던 각 고을의 전세(田稅)와 대동미(大同米)를 싣고 마산포구를 출발하여 서울까지 운송하였다. 운송 기간은 약 3개월이 소요되어 6월경 서울에 도착하였다.
[변천]
창원의 조창은 1760년(영조 36)에 다시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창원 주변 아홉 개 고을들에서 창원의 조창으로 세곡을 운송하였으나 1786년(정조 10) 가을 김해 지역에서는 백성들이 창원까지의 거리가 멀어 세금을 수송하기가 어렵다고 순영(巡營)에 건의하였다. 이에 순영에서 장계를 올리니 조정에서는 김해 지역의 세곡은 밀양에 있는 조창으로 수송하도록 하였고, 고성과 거제 지역의 세곡은 견내량(見乃梁)에 있던 속창(屬倉)으로 수송토록 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