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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경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714
한자 甘景仁
영어음역 Gam Gyeongin
이칭/별칭 여일(汝一),관술정(觀術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민긍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시
성별
생년 1569년연표보기
몰년 1648년연표보기
본관 회산
대표관직 여도만호

[정의]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여일(汝一), 호는 관술정(觀術亭), 아버지는 감예종(甘禮從)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박종(朴宗)의 딸이다. 동생은 감경륜(甘景倫)이다.

[활동사항]

감경인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권관이 되었다. 1606년(선조 39) 도해차관부사과 전계신(全繼信)을 따라 군관으로 일본에 갔다가 차관이 왜인과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문답별록(問答別錄)』과 장계를 가지고 먼저 돌아와 여도만호를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 100여 명을 모아 경상북도 상주에 이르렀으나 이괄이 이미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1628년(인조 6) 상소를 올려 민심을 바르게 하고, 재해에 대비하며, 부역을 관대히 하고, 농상을 권장하며, 군사 장비를 마련하고, 속오를 분명히 하며, 기예를 힘써 익히고, 인재를 등용할 것 등 8가지 일을 진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삼열당문집(三烈堂文集)』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효행으로 이름이 드러나, 본도에서 장계를 올려 감경인이 세금과 요역을 면제 하였다. 1877년(고종 14) 창원향교가 훼철되자 창원 지역 유림에서 서쪽의 육영재(育英齋)를 옮겨다 경상남도 창원시 내리동관술정(觀術亭)을 지었는데, 1936년 관술정 뒤에 삼열사(三烈祠)를 지어 감경인과 동생 감경륜을 봉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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