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825 |
---|---|
한자 | 金昌瑢 |
영어음역 | Gim Changyong |
이칭/별칭 | 내언(乃彦)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지귀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용 |
성격 | 효자 |
---|---|
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 |
성별 | 남 |
생년 | 1822년 |
몰년 | 1845년 |
본관 | 김해 |
[정의]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가계]
김창용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내언(乃彦).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파(三賢派)의 5세손인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역시 효자로 이름난 김우진(金禹振)이다.
[활동사항]
김창용은 창원군 상남면 지귀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효행을 이었으므로 향리에서 ‘대를 이은 효자’가 났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고, 귀감으로 삼았다. 어느 해 겨울 아버지의 목에 조그만 종기가 생겨나더니 나중에는 큰 혹으로 변하여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이에 김창용은 의원이 말해 준 특효약인 뱀의 알을 구하기 위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몇 시간 동안 산속을 헤매다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가 시끄러운 까치 소리에 깨어났는데, 혹시나 하고 까치가 앉아 있는 곳을 봤더니 뱀의 알이 있었다. 김창용은 기쁜 마음으로 뱀의 알을 약으로 아버지께 해드렸는데, 그 후 아버지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로 못 다한 효도를 다하였다. 그 후 외딴 곳에 있는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게 되었다. 해가 저물도록 끝나지 않아 밤늦도록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빛이 나타나 이장하던 곳을 환히 밝혀 주었다. 인부들은 그 불빛이 김창용의 효성에 감동한 귀신불로 알고 서둘러 하던 일을 마쳤다. 그러자 불빛은 묘지를 한 바퀴 돈 다음 휑하니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인부들과 향리 사람들은 아버지에 이은 아들의 효성에 감동한 귀신불이 두 번이나 나타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라 여겼다 한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 동쪽 독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지방 사림이 정장하여 통정대부에 가자되고 수직(壽職)이 내려졌다. 또한 정려가 내려져 문중 후손들이 김창용과 김창용의 아버지인 김우진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현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 노인회관 앞에 김해김씨부자포효비(金海金氏父子褒孝碑)를 세웠다. 후손들이 음력 10월 15일 이후 일요일에 묘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