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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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景宗 |
영어음역 | No Gyeongjong |
이칭/별칭 | 효성(孝誠),명암(明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명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민긍기 |
성격 | 의병|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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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명곡동 |
성별 | 남 |
생년 | 1555년 |
몰년 | 1625년 |
본관 | 교하 |
대표관직 | 중추부첨지 |
[정의]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효성(孝誠), 호는 명암(明菴).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노공석(盧公奭)이고, 어머니는 하씨(河氏)이다. 장인은 권탁영(權擢英)이다.
[활동사항]
노경종(盧景宗)[1555~1625]은 일찍이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문하에서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초계(草溪)[현 경남상도 합천]에서 왜적과 싸우고 창원으로 돌아와 김홍면(金弘勉)·권탁영(權擢英)과 함께 소모장 이정(李瀞)[1541~1613]의 참모가 되어 공을 세웠고, 훈련원정에 제수되었다.
1597년(선조 30)에 일어난 정유재란 때는 창원도호부의 군중에서 여러 차례 왜적을 베는 공을 세워 훈련원정에 제수되었고, 1603년(선조 36)에 나라에서 특별히 설치한 공신무과에 급제하여 절충부호군으로 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고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이 잡혀 국문을 받게 되자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1621년(광해군 13) 중추부첨지가 되었으며, 1625년(인조 3)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마산시 예곡동 두릉(杜陵)에 있다.
[상훈과 추모]
1595년(선조 28)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아 선무원종 2등공신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