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2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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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原靑年同盟 |
영어의미역 | Changwon Youth Allianc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성격 | 사회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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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도/일시 | 1928년 2월 |
해체연도/일시 | 1931년 |
설립자 | 설관수(임시집행부 의장)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연합체.
[설립목적]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통일적인 조직을 결성하여 청년 대중의 정치적, 경제적, 민족적 이익의 획득과 생활의 향상을 꾀하고자 설립하였다. 또한, 조선 청년 대중의 의식과 교양 등을 철저히 훈련하고 조선 청년 대중의 장고한 조직의 완성을 기하고자 창원청년동맹을 설립하였다.
[변천]
1928년 2월 7일 창원청년연맹이 해체를 선언하고 그 자리에서 창원청년동맹을 조직하였으며, 창원청년동맹 창립 대회 준비 위원으로 김한용(金漢龍), 임시집행부로 의장 설관수(薛灌銖)와 부의장 김한용을 선출하였으며, 규약 기초 위원은 강호철(姜鎬哲)이었다. 1928년 3월 9일에는 창원청년동맹 창원지부를 조직하였는데 가맹원 30여 명이 참석하였고, 임시 집행부 의장에 강호철과 서기에 이영일(李英逸)이 선출되었다.
1928년 3월 13일에는 남면청년동맹을 해체하고 창원청년동맹 남면지부를 설치하였으며, 회원은 30여 명에 달하였다. 남면지부의 위원으로는 위원장 서기석(徐奇碩), 위원 홍우진(洪祐珍), 안경호(安璟鎬), 주병택(朱炳澤), 강일천(姜日千), 이태문(李泰文), 팽종수(彭鍾琇), 안경호(安慶鎬), 양국성(梁國成), 김찬수(金瓚壽), 홍우석(洪祐錫), 김몽수(金夢守), 손기태(孫琪泰) 등이었다.
1928년 4월 1일에는 창원청년동맹 진해지부가 창립되었으며, 창원청년동맹은 1931년까지 활동을 계속하였다. 창원청년동맹에서 활동했던 다수의 인물은 신간회 창원지회에서 활동을 같이하였으며, 창원청년동맹은 신간회 창원지회와 함께 창원 지역을 대표하는 항일운동 단체였다.
[활동상황]
창원청년동맹은 회원의 연령을 16세에서 27세로 제한하여 젊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청년 단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결성과 함께 창원청년동맹은 기존의 각 지역 청년회를 청년 동맹의 지부 조직으로 개편하여 창원지부, 남면지부 등을 조직 운영하였다. 일제는 창원청년동맹의 활동에 대해 대중 강연은 물론이고 소인극 공연과 청년 동맹의 일상적 활동을 끊임없이 탄압하였다.
창원청년동맹은 임시총회와 정기대회, 상무위원회 등을 열어 제반 사항과 지부 설립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였다. 또한, 대중강연을 열어 청년들의 의식을 높이는가 하면, 소풍 등의 모임을 가져 회원 상호 간의 친목도 도모하였다. 또한, 방학 중 고향에 온 유학생들의 환영회 등을 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