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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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강종원 |
[정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기원 전후부터 7세기 중후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역사.
[개설]
한국의 고대는 고구려와 삼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한 백제, 신라, 가야 등이 형성, 발전한 시기이다.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변한·진한으로 구분되었으며, 70여 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각각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이란 이름의 소국으로 등장하여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고대 국가를 이룩하였다. 삼국은 그 후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는 668년까지 병립하였다.
[행정 구역]
고대는 원삼국 시대와 삼국 시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천안 지역에는 원삼국 시대 마한의 맹주국이었던 목지국(目支國)이 위치하였던 것으로 비정된다. 이후 한강 유역에서 성장한 백제가 천안 지역을 병합하면서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그 시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 따르면 온조왕 대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는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백제 시기 천안은 지금의 목천 일대에 대목악군(大木岳郡)이 독립적인 별도의 행정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풍세면·광덕면 지역에는 감매현(甘買縣)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직산 지역에는 사산현(蛇山縣)이 있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사산현이 고구려의 영토로 되어 있는데, 이는 백제의 영토였던 사산현이 전쟁을 통해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된 까닭으로 보인다. 553년 신라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백제로부터 탈취하고, 현재의 천안에 비정되는 도살성까지 영향 하에 두었다. 삼국시대 말 천안 지역은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격렬하게 쟁패를 겨루던 각축장이었다 할 수 있다.
신라의 삼국 통일 후 천안 지역은 웅주[공주] 관할로 편제되었으나, 북부 지역인 직산[사산현] 지역은 한산주의 백성군[안성] 관할로 편제되었다. 신라 경덕왕은 대목악군을 大麓郡(대록군)으로, 감매현을 馴雉縣(순치현)으로 개명하였다. 사산현은 명칭 변경이 없었다.
[유적]
천안 지역에서 확인된 원삼국 시대의 유적은 주거 유적 및 분묘 유적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주거 유적은 두정동 유적과 장산리 유적, 용원리 유적, 도림리 유적이 대표적이며, 분묘 유적으로는 청당동, 신풍리, 운전리 등에서 토광묘 및 주구 토광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외에 용정리 유적에서 고지자기(古地磁氣)를 분석한 결과 서기 340±15년으로 추정되는 원삼국 시대 숯가마[탄요] 1기가 확인되어 주거 유적과 분묘 유적 이외의 생산 유적도 확인되었다.
삼국 시대 유적으로는 분묘 유적 및 관방 유적, 생산 유적 등이 확인되고 있다. 분묘 유적의 경우는 용원리 유적, 화성리 유적, 두정동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화성리·용원리 유적의 경우 중국제 유물 및 위신재(威信財)가 상당수 출토되었다는 특징이 있으며, 조성 연대는 4세기 중후반으로 편년된다. 관방 유적에 해당하는 토성은 백석동 토성 및 직산 사산성에서 확인되었는데, 두 성 모두 판축식으로 나무 기둥의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쌍용동 용암 유적에서는 천장부가 모두 붕괴되어 소성부 바닥면 일부만 잔존하는 4세기대[서기 340±40]의 숯가마 3기가 확인되었다. 매성리 유적에서도 토기 가마 2기, 수혈 유구 6기, 추정 작업장 1기 등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