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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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安白石洞先史遺蹟-百濟土城 |
이칭/별칭 | 백석동 토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 749-1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창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3월~1996년 5월 - 천안백석동선사유적및백제토성 발굴 조사 시작/종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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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8월 5일 - 천안백석동선사유적및백제토성 충청남도 기념물 제106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천안백석동선사유적및백제토성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천안백석동선사유적및백제토성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 527-8 |
출토 유물 소장처 | 공주 대학교 박물관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182 |
성격 | 선사 유적|토성 |
크기(높이, 길이, 둘레) | 260m[둘레]|3m[남벽의 외부 높이]|1m[남벽의 내부 높이] |
면적 | 8,313㎡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과 성동동에 있는 백제 토성 및 성 안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유적.
[개설]
천안백석동선사유적및백제토성(天安白石洞先史遺蹟-百濟土城)은 천안 제3공단 조성 부지 발굴 과정에서 공주 대학교 박물관이 1996년 실시한 3차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일명 ‘백석동 토성’으로도 불린다.
[위치]
천안시 백석동 지역으로 동쪽 노태산[해발 141m]과 서쪽 금마산[해발 110m] 사이의 산림 지역에 있으며, 해발 60~123m 정도이다. 주소는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 749-1번지이다.
[형태]
백제 토성은 표고 100m 내외 능선에 테뫼식[산의 정상부를 둘러쌓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는데, 둘레는 260m이다. 성벽은 지형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곡옥과 같은 형태로 조성되었다.
토성과 관련된 시설로는 판축(版築) 성벽을 비롯해 외호(外濠), 성 내부의 용수 저장 시설, 움집 터 3기, 추정 문지 등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산사면을 ‘L자’ 형으로 굴광한 후 나무 기둥을 세우고 토루(土壘)를 조성하였다. 나무 기둥은 지름 20㎝ 내외의 통나무로 성선을 따라 130~150㎝ 내외의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성벽의 상면에서는 불다짐에 의해 지면을 보강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동쪽과 남쪽만이 남아 있고, 북쪽과 서쪽은 자연 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문지(門址)는 남벽에 위치하는데, 폭이 2m 정도이다. 남벽의 외부 높이는 3m, 내부는 1m이며, 성 안의 북쪽에 망대(望臺)로 추정되는 고지가 있다.
집 자리는 3기가 확인되었는데, 장방형의 수혈 주거(竪穴住居)[땅을 파서 만든 반지하 집]이다. 내부에서는 아궁이가 시설되었다. 그리고 정상과 북쪽에는 용수 저장 시설로 보이는 너비 3.4m, 깊이 1.6m의 구덩이 2개가 있으며, 남쪽에는 가마터로 보이는 불에 탄 토층이 있다. 출토 유물로 도연 조각과 토기 조각, 토기 호, 토기 대접 등이 있다.
백제 토성 안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도 확인되었는데, 기원전 10세기에서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 전기의 유적이다. 형태는 바닥을 약간 파내려 가게 만든 장방형이다. 내부에는 여러 개의 화덕이 있으며, 민무늬 토기를 비롯해 돌칼 등의 석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천안백석동선사유적및백제토성은 1997년 8월 5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전체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백제 시기 토성의 전체적인 구조와 축조 방식, 내부 시설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토성의 축조 시기는 출토 유물을 통해 웅진기로 비정되는데, 당시 백제의 북쪽 지역을 경계하기 위한 보루 성으로서 기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